'치매' 명칭 사라질까…대통령 간담회서 나온 대안 '사랑환자'

입력 2017-06-02 17:13
문재인 대통령이 2일 서울요양원을 방문해 텃밭공원에서 원예치료 중인 치매환자들과 화분을 만들고 있다. 문 대통령 왼쪽은 배우 박철민씨. 뉴시스

'치매'는 엄밀히 말하면 의학 용어가 아니다. 그 자체로 하나의 질환을 뜻하는 게 아니라 여러 원인에 의한 뇌손상으로 기억력을 비롯한 인지기능 장애가 생긴 상태를 의미하는 포괄적 용어다. 

'강도보다 무서운 게 치매'란 말이 있을 정도로 부정적인 뉘앙스를 갖고 있다. 일상생활이 어려울 정도로 인지 능력이 떨어지게 되는 증상의 특성 때문에 치매란 말은 사람들에게 거부감을 준다. 의사가 치매라고 진단해도 그 사실 자체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환자도 많다.

문재인 대통령은 2일 오전 서울 강남구 세곡동의 서울요양원을 방문했다. '치매국가책임제'를 위한 현장간담회를 가졌다. 세 번째 '찾아가는 대통령' 일정이었다. 이 자리에서 치매에 대한 국민의 인식 개선을 위해 거부감이 큰 치매란 말 대신 다른 용어를 도입하자는 의견이 나왔고, 문 대통령은 큰 관심을 보였다.

말을 꺼낸 건 서울요양원 근무자 한훈희씨였다. 그는 "환자 사례 관리가 치밀하게 이뤄지면 좋겠다"면서 "치매의 특성상 치매라는 단어에 거부감이 크다. 국가 차원에서 인식 개선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에 문대통령은 "생각해둔 용어가 있나"라고 물었고, 그는 "일본은 인지장애증이라고 한다"고 답했다. 

이 행사는 방송인 김미화씨와 배우 박철민씨가 참석해 진행을 도왔다. 김미화씨는 치매 어르신을 위해 봉사활동을 해 왔고, 박철민씨는 어머니가 치매를 앓고 있다. 용어 얘기가 나오자 박씨는 "치매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이어서 용어를 생각해봤다. '사랑환자'. 사랑이 필요한, 사랑으로 돌봐야 하는 환자들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통령께서 (치매국가책임제를) 멋지게 시작하면, 인기가 많으니까 단번에 될 것이다. 이제는 요양병원에 모신다고 하면 효자라는 얘기가 나오도록 해 달라"고 부탁했다.

이에 문 대통령은 마무리발언에서 "오늘은 일단 치매라고 합시다"라며 말문을 열었다. 인식 개선을 위해 '치매'라는 말 대신 새로운 용어를 찾아 도입하겠다는 뜻이 담긴 말이었다. 


현장간담회에서는 치매 환자의 가족들이 참석해 애로를 털어놨다. 문 대통령이 지난해 10월 27일 노원구 치매지원센터를 방문했을 때 만났던 치매환자 가족 나봉자(78)도 참석해 이야기를 나눴다. 치매 가족들의 이야기에는 오랫동안 마음 속에 응어리져 있던 고통과 고민이 담겨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들의 말을 들으며 쉬지 않고 메모를 했다.

◆ 황옥래씨

"85세 아버지가 치매 앓고 있습니다. 2008년부터입니다. 지금은 심해져서 치매지원센터를 찾아갔습니다. 강도보다 무서운 게 치매인 것 같습니다. 치매 어머니를 그렇게 한 존속 범죄를 보면서 얼마나 힘들면 저럴까 했습니다. 치매 어르신이 있으니 가족이 너무 힘듭니다. 그래서 가족요양도 신청했습니다. 주간보호센터에 들어가는 비용이 월 30만원입니다. 약값은 7만원 정도. 정부에서 3만원 지원됩니다. 이 역시 힘듭니다. 지원을 많이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서울시에 가족요양제도가 있는데, 좋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주민등록상 같은 번지 내에 있는 사람만 혜택을 준다고 합니다. 아버지와 5분 거리에 사는데 같은 번지가 아니어서 혜택을 받기 어려웠습니다. 저 같은 경우가 많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치매는 가족만이 아닌 지역사회가 힘을 합해야 한다는 대통령님 공약이 이행돼서 밝은 빛이 되길 바랍니다."

◆ 이영란씨

"저는 치매인 친정아버지를 직접 모셨습니다. 아이들이 당황하고 놀랍니다. 음식을 준비할 때도 불쑥 밖으로 나가시곤 하니까요. 요양원을 많이 찾아 다녔습니다. 요양원에 보내드리자니 마음이 아프고 했는데, 요양원 입소가 허락됐을 때 로또에 당첨된 것처럼, 아들이 대학에 간 것처럼 기뻤습니다. 경기도 인근을 요양원을 찾아다녔습니다. 좋다는 데는 대기자가 너무나 많습니다.

이쪽 치매센터로 와서 보니 공단에서 하니까 확실히 다릅니다. 대통령께서 공약으로 했을 때 이 부분은 정말 치매환자 보호자로서 기뻤습니다. 개인적으로 운영하는 곳은 영리 목적에 맞아야 하기 때문에 국가가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반드시 공약을 지켜주시리라 믿습니다. 제가 평범한 국민인데, 이렇게 누릴 수 있다는 게 기쁩니다. 치매를 국가가 체계적으로 관리한다면 제 노후도 겸허하게 받아들이겠습니다."

◆ 나봉자씨

"저는 치매를 앓고 있는 남편과 살고 있습니다. 처음에 치매 진단이 나왔을 때 치매라고 안하고 인지장애라고 했습니다. 약을 잘 먹으면 괜찮아질 수 있다고 했어요. 그런데 약을 먹으니까 사람이 이상해집디다. 1, 2년 정도는 같이 생활했는데, 집에서 앉혀놓고 이야기를 해봐도 (소통이) 잘 안 돼서 구청 (치매지원)센터를 찾아갔습니다.

2014년부터 노원치매센터의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돈을 내고 시설에 가도 되는데, 노원치매센터에서 보호자와 같이 하는 모임에 한 번도 안 빠지고 다니고 있습니다. 의사 선생님을 만날 수도 있고, 전문적으로 배운 치료사를 만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치매지원센터가 마치 병원 같습니다. 정말 어려운 분들이 모임을 할 수 있는 장소, 그게 제일 중요한 것 같습니다."

◆ 박희영씨

"집에서 모시기가 참 어렵습니다. 벽에 똥칠한다는 얘기를 상상을 못했는데, 이제 이해가 됩니다. 부탁드리고 싶은 것은, 우리 신랑도 얼마 전에 수술해서 장기보호센터에 간 적이 있는데, 자리가 없습니다. 가보면, 저도 가기 싫은 곳이어서 마음이 아팠고, 자주 씻겨드리지 못해 사람꼴이 아니었습니다. 눈물이 났어요. 치매가족휴가제가 도입됐는데 휴가를 못가고 있습니다. 다들 이용할 수 있도록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태원준 기자 wjt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