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2일 오전 서울 강남구 세곡동의 서울요양원을 방문했다. '치매국가책임제'를 위한 현장간담회를 가졌다. 세 번째 '찾아가는 대통령' 일정이었다. 첫 번째는 '비정규직 제로 시대' 의지를 밝힌 인천공항 비정규직 간담회, 두 번째는 '미세먼지 대책'을 발표한 초등학교였다.
현장간담회에는 치매 환자의 가족들이 참석해 애로를 털어놨다. 치매가족을 두고 있는 배우 박철민씨와 오랫동안 치매어르신들을 위해 봉사활동을 펼쳐온 김미화씨의 진행했다. 문 대통령이 지난해 10월 27일 노원구 치매지원센터를 방문했을 때 만났던 치매환자 가족 나봉자(78)도 참석해 이야기를 나눴다.
치매 가족들의 이야기에는 오랫동안 마음 속에 응어리져 있던 고통과 고민이 담겨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들의 말을 들으며 쉬지 않고 메모를 했다.
◆ 황옥래씨
"85세 아버지가 치매 앓고 있습니다. 2008년부터입니다. 지금은 심해져서 치매지원센터를 찾아갔습니다. 강도보다 무서운 게 치매인 것 같습니다. 치매 어머니를 그렇게 한 존속 범죄를 보면서 얼마나 힘들면 저럴까 했습니다. 치매 어르신이 있으니 가족이 너무 힘듭니다. 그래서 가족요양도 신청했습니다. 주간보호센터에 들어가는 비용이 월 30만원입니다. 약값은 7만원 정도. 정부에서 3만원 지원됩니다. 이 역시 힘듭니다. 지원을 많이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서울시에 가족요양제도가 있는데, 좋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주민등록상 같은 번지 내에 있는 사람만 혜택을 준다고 합니다. 아버지와 5분 거리에 사는데 같은 번지가 아니어서 혜택을 받기 어려웠습니다. 저 같은 경우가 많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치매는 가족만이 아닌 지역사회가 힘을 합해야 한다는 대통령님 공약이 이행돼서 밝은 빛이 되길 바랍니다."
◆ 이영란씨
"저는 치매인 친정아버지를 직접 모셨습니다. 아이들이 당황하고 놀랍니다. 음식을 준비할 때도 불쑥 밖으로 나가시곤 하니까요. 요양원을 많이 찾아 다녔습니다. 요양원에 보내드리자니 마음이 아프고 했는데, 요양원 입소가 허락됐을 때 로또에 당첨된 것처럼, 아들이 대학에 간 것처럼 기뻤습니다. 경기도 인근을 요양원을 찾아다녔습니다. 좋다는 데는 대기자가 너무나 많습니다.
이쪽 치매센터로 와서 보니 공단에서 하니까 확실히 다릅니다. 대통령께서 공약으로 했을 때 이 부분은 정말 치매환자 보호자로서 기뻤습니다. 개인적으로 운영하는 곳은 영리 목적에 맞아야 하기 때문에 국가가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반드시 공약을 지켜주시리라 믿습니다. 제가 평범한 국민인데, 이렇게 누릴 수 있다는 게 기쁩니다. 치매를 국가가 체계적으로 관리한다면 제 노후도 겸허하게 받아들이겠습니다."
◆ 나봉자씨
"저는 치매를 앓고 있는 남편과 살고 있습니다. 처음에 치매 진단이 나왔을 때 치매라고 안하고 인지장애라고 했습니다. 약을 잘 먹으면 괜찮아질 수 있다고 했어요. 그런데 약을 먹으니까 사람이 이상해집디다. 1, 2년 정도는 같이 생활했는데, 집에서 앉혀놓고 이야기를 해봐도 (소통이) 잘 안 돼서 구청 (치매지원)센터를 찾아갔습니다.
2014년부터 노원치매센터의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돈을 내고 시설에 가도 되는데, 노원치매센터에서 보호자와 같이 하는 모임에 한 번도 안 빠지고 다니고 있습니다. 의사 선생님을 만날 수도 있고, 전문적으로 배운 치료사를 만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치매지원센터가 마치 병원 같습니다. 정말 어려운 분들이 모임을 할 수 있는 장소, 그게 제일 중요한 것 같습니다."
◆ 박희영씨
"집에서 모시기가 참 어렵습니다. 벽에 똥칠한다는 얘기를 상상을 못했는데, 이제 이해가 됩니다. 부탁드리고 싶은 것은, 우리 신랑도 얼마 전에 수술해서 장기보호센터에 간 적이 있는데, 자리가 없습니다. 가보면, 저도 가기 싫은 곳이어서 마음이 아팠고, 자주 씻겨드리지 못해 사람꼴이 아니었습니다. 눈물이 났어요. 치매가족휴가제가 도입됐는데 휴가를 못가고 있습니다. 다들 이용할 수 있도록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간담회에 참석한 서울요양원 근무자는 '치매'란 용어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이고 거부감을 주니 인식 개선을 위해 다른 용어를 사용하면 좋겠다는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문 대통령은 "생각해둔 용어가 있나"라고 물었고, 그는 "일본은 인지장애증이라고 한다"고 답했다. 배우 박철민씨는 "치매환자 대신 '사랑환자'라고 하면 어떨까 생각해봤다. 사랑이 필요한 환자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문 대통령은 마무리발언에서 "오늘은 일단 치매라고 합시다"라며 새로운 용어 도입 가능성을 시사했다. 문 대통령은 "치매환자 모두가 요양등급을 받을 수 있도록 등급을 대폭 확대하는 것이 필요하다. 증상에 따라 맞춤형 서비스를 해야 한다. 또 치매지원센터를 대폭 확대해야 할 것이다. 지금 47개밖에 되지 않는다. 그것도 40개 정도는 다 서울에 있다. 이를 250개 정도로 대폭 늘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복지부에서 종합대책을 마련해 6월 말까지는 구체적인 방안을 국민께 보고할 수 있을 것"이라며 "치매는 이제 국가와 사회가 함께 책임져 내가 치매에 걸리더라도 안심할 수 있게 제가 약속드리고, 책임지겠다"고 말했다.
태원준 기자 wjt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