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와 같이 학습을 중시하는 분위기에서는 학습장애가 있는 아이들의 경우 ‘저능아’ 취급을 받으면서 무시와 질타를 받아 심각한 위축 상태에 빠질 확률이 높다. 학습 장애의 가능성이 있다면 조기에 발견해 치료하는 동시에 아이의 강점(실제로 이들은 학습 이외의 면에선 일반 아동에 비해 특별한 강점이 많은 편이다)을 살려 자신감을 잃지 않고 재능을 살릴 수 있도록 하는 노력을 동시에 해야 한다.
J는 초등학교 3학년 남자 아이다. 게으른데다 공부에는 도통 관심이 없어 학업이 너무 처지자 병원을 찾았다. J는 5세쯤부터 한글을 배우기 시작하였는데도 초등학교 입학 할 당시에 한글을 깨치지 못하였다. 한글을 떠듬떠듬 읽기는 하지만 ‘하마’ ‘아버지’등 받침이 없는 단순한 철자 이외에는 조그만 받침이 들어가도 이를 쓰지 못했다. 학년이 올라가도 띄어쓰기를 전혀 하지 못하고 맞춤표, 쉼표 등을 제대로 찍지 못하니 받아쓰기는 거의 영점을 받았다.
구구단을 아무리 연습해도 외우질 못했고, 단순한 수의 계산도 하지를 못했다. 지진아란 소리를 들어가며 학교를 다녀야 했고 특수반으로 가야 한다는 권유를 받았다.
하지만 J는 어려서부터 그림을 그리거나 만들기를 할 때에는 너무나 창의적으로 실력을 발휘했다. 다른 아이들보다 뛰어난 작품을 만들어 냈다. 필자도 J가 병원 대기실에서 나무 블록으로 만들어 놓은 ‘아름다운 성’을 보고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또 성격도 사교적이고 친구나 엄마, 동생의 마음도 잘 이해해 주고 배려도 잘하는 따뜻한 아이였다.
하지만 학년이 오르면서 한글 철자조차 제대로 모르고 간단한 계산조차 하지 못하는 J는 선생님이나 부모님으로부터 게으르고 공부를 하지 않으려 한다는 핀잔을 일상적으로 들어야 했다. 차츰 자신감을 잃었고 학교에 가기를 싫어하기에 이르렀다.
J와 이야기를 나눠 보니 상대의 말을 잘 이해하고 뉘앙스 까지 잘 파악하여 적절히 답을 하곤 하는 센스 있는 아이였다. 책을 읽어 보게 하고 내용을 파악했는지 물어 보자 줄거리를 잘 이야기했고 책의 요지나 주제도 잘 말하는 아이였다. 단지 주인공의 이름이 무엇이었는지 등 단순한 것을 기억하지 못했다. 산수 역시 함께 문제를 풀어 보니 문제가 어떤 의미 인지를 파악하고 있었으나 단순한 계산 방법을 모르고 자릿수를 맞추는것 조차 알지 못해 전혀 엉뚱한 방법으로 계산해 버리니 맞는 답을 쓸 수가 없었다.
일반적으로 철자의 오류가 심하고, 띄어쓰기나 계산의 오류가 많은 아이들은 집중력 혹은 주의력의 장애가 있는 경우가 많다. 집중력에 장애가 있는 아이들은 오류에 일관성이 없어 옆에서 엄마가 지켜보고 있다든가 주의를 환기 시키면 맞게 쓰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쉬운 글자도 틀리게 쓰는 등의 문제를 보인다. 계산도 방법을 모르는게 아니라 혼자 문제를 풀게 했을 때는 실수가 빈번하다는 특징이 있다. 반면 학습장애가 있는 아이들은 일관되게 부진한 양상을 보인다.
단순한 집중력 장애라면 간단한 약물 치료로 잘 치료지만, J와 같은 학습장애 아이는 치료가 간단치 않다. 이는 선천적으로 타고난 뇌 기능 상의 어려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학습장애 아동이라 하더라도 초등학교 3학년 이전에만 발견해 치료한다면 치료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이호분(연세누리 정신과 원장, 소아청소년 정신과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