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연씨가 떠났다.
십년전쯤 들 것에 뉘인채로 우리집에 와서…. 침대 위에서 살다가 이제 훨훨 창공으로 날아갔다.
토요일 아침 응급후송. 그리고 어젯밤까지 삶과 죽음 사이 실낳같은 외줄을 걷다가 툭! 하고 끊어졌다. 인공호흡기를 떼어내고.
링거 바늘을 뽑아도…. 심전도…. 떼어내는 손끝들이 익숙해져 보여 눈물이 나질 않았다.
새로 두시가 되어서야 정연씨를 데리고 공동체로 돌아와 그녀의 침대에 눕혔다. 이렇게 놔두는게 싫다고 말했다. 병원 냉동실에서 화장장으로 보낸는건 아니라고. 내 방으로 돌아와 누웠어도 피곤했지만 쉽사리 잠들지 못했다.
오늘은 장례센터에 들러 몇가지 장의용품을 차에 실었다. 여기저기 전화를 하고. 영혼없는 소리로 생멸을 확인하고 프린터에서는 내일 열한시 화장 확인서가 출력되고 있었다.
약국에 둘러 알콜을 몇통사니 익숙한 약국 보조원이 뜨아한 얼굴로 쳐다본다. 나는 입속으로만 오늘 당신네 정기적인 단골고객이 사라졌다고 이 알콜은 고객의 몸을 씻길거라고 말해주었다.
오랫만이다. 차갑게 느껴지고. 더운 날이다.
망자를 위로하고 하늘의 도움을 구하는 기도를
올리고나서…. 곱게 씻겨 단장하고 평생 한번 걸치지도 못한 베옷으로 야윈 몸을 덮어주었다.
평생 저자에서 장삼이사로 살다가 의지가지 할데 없고
뒷골목을 전전하며 살다 운수 꼬여 장애까지 입어 전신마비로 십수년을 살다 예까지 흘러왔는데….
이렇듯 학이며…. 장수의 동물이 노니는 신선도가 그려진 흉배와 관포라니…. 그런 생각을 하면서…. 티셔츠라도 예쁜 것 자주 사다입혔더라면 하는 후회를 했다. 치장도 다 끝나고.
그녀가 그렇게 품고 걸고 만지작 거리던 5단 묵주를 목에 걸어 주었다.
목관의 나무못이 부드럽고 단호하게 관뚜껑에
박혔다. 묶고 덮어 평평하게 한다음 마지막으로 명정에 그녀의 이름을 유성잉크로 새겨 넣었다.
나무 십자가와 초…. 그리고 작은 소리로 들리는 송가를 그녀 귓가쯤 되는곳에 울려 두었다.
시설장들의 단톡방에 알려두었더니 몇몇의 원장님들이 다녀가셨다. 장례는 산자들의 위로 일뿐…. 그녀의 영혼은 이미 구천을 날아…. 사랑했던 그이 품에 안겨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후 세시가 되자 잠이 쏟아졌다. 눈떠보니….하나둘 퇴근들하고…. 나는 옥상으로 올라갔다.
내 강아지 친구 꼼대와 함께 봄농사의 수고가 벌써 풍성하게 일어나고 있음을 감탄하며…. 이제 봄이 다 갔음을…. 여름의 닥침과 함께 봄의 끝자락을 붙잡고 떠난 몸은 못 움직여도 입만 살아서 ‘봄날은 간다'를 이절까지 가사한소절 틀리지도 않고 처량맞게 불러대던….
열한해 동안 함께 또 다른 가족의 인연으로 만났던 그녀와의 이별을 서러워 한다. 잘가요. 주정연 마리아씨.
1일 밤 페이스북에 올라온 한용걸 신부(함께걷는길벗회 이사장)의 글이다.
그는 10여년전쯤 오갈데 없는 사람들을 모아 함께 살면서 죽음에 이른 일가친척 한명 없는 가난한 죽음이 생기면 직접 염을 하곤 했다.
그 모습을 박우섭 인천 남구청장이 보고 사회복지 현장의 진면목을 느꼈다고 한다. 아무 통보도 없이 혼자 방문한 그곳에서 한용걸 신부가 세상을 떠난 가난한 자를 위해 혼자 솜으로 죽은 이의 온 몸을 깨끗하게 닦아주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천국의 계단을 밟은 장애인은 그곳에서는 장애를 느끼지 않고 살 수 있을까.
인천=정창교 기자 jcgy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