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용 안보실장 방미 출국…맥마스터 등과 정상회담 조율

입력 2017-06-01 10:30

사드 배치 보고 누락과 진상조사의 파장이 외교적 문제로까지 비화될 조짐을 보이는 가운데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1일 미국으로 출국했다. 이달 중으로 예정된 한·미 정상회담을 준비하기 위해서다. 정 실장은 미국 백악관의 카운터파트를 비롯해 도널드 트럼프 정부 인사들과 만나 정상회담 사전조율을 하게 된다.

청와대는 "정 실장이 2일까지 미국메 머물며 허버트 맥마스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등 고위 인사를 만나 양국 신정부 출범 이후 첫 한‧미 정상회담의 성공적 개최를 위한 방안과 한‧미동맹 강화, 북한‧북핵 문제 등 현안에 대해 심도 있는 협의를 가질 예정"이라고 1일 밝혔다.

이번 일정은 정 실장이 국가안보실장에 취임한 뒤 첫 번째 미국 방문이다. 문재인정부 출범 직후 한‧미 정상 통화(5/10)와 특사 방미 외교(5/17~20) 등을 통해 다져온 협력 기반을 공고히하기 위한 것이라고 청와대 측은 설명했다. 

◇ 美 "사드 배치 투명" - 中 "엄중한 우려"

미국은 사드 배치 보고누락 논란을 한국 내부 사정으로 간주하는 분위기다. 사드 반입과 배치는 한·미동맹 차원에서 긴밀히 협의하고 진행된 만큼 양국 관계에 미칠 사안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사드 논란이 커질 경우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첫 한·미 정상회담에 불똥이 튈까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미 국방부 제프 데이비스 대변인은 30일(현지시간) 기자들에게 “우리는 사드 시스템의 배치와 관련해 한국 정부와 앞으로도 긴밀히 협력할 것”이라며 “배치 과정은 매우 투명하게 진행됐다”고 설명했다. 또 “사드 시스템을 완성하기 위해 모든 장비를 언제까지 배치해야 하는지에 대한 공식적인 시한은 없다”면서 “사드는 현재 초기 요격능력만 보유하고 있으나 장비를 추가할 경우 여유가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워싱턴 외교가는 일단 사드 보고누락 논란이 한·미 정상회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지는 않는다. 6월 말로 예정된 정상회담을 준비하는 양국 실무진 사이에서는 이번 회담이 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의 첫 만남인 만큼 두 정상이 친분과 신뢰를 쌓는 계기가 되도록 애를 쓰고 있다. 

갈등이나 이견을 드러낼 소재는 가급적 상정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정의용 안보실장의 방미 협의에서도 사드 비용이나 비공개 반입 논란 등은 의제에서 배제될 것이라는 게 소식통들의 전언이다. 다만 한 외교소식통은 “트럼프 대통령이 불쑥 문 대통령에게 사드에 대한 의견을 묻거나 비용 부담을 요구할까봐 걱정”이라고 말했다.

반면 중국은 한국의 사드 배치 보고누락 사태와 관련해 엄중한 우려를 표명했다. 화춘잉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31일 정례 브리핑에서 한국에서 사드 4기의 추가 반입 논란이 일고 있는 것과 관련해 “중국은 유관 상황에 대해 엄중한 우려를 표한다”고 밝혔다. 이어 “중국은 사드 배치에 결연히 반대하며 다시 한 번 한국과 미국이 사드 배치를 중단하고 취소하기를 강력히 촉구한다”고 덧붙였다.

문재인 대통령이 31일 오후 청와대 여민관에서 더빈 미국 민주당 상원 원내총무와 면담 전 악수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 문 대통령 "미국이 이해해줘야"

문재인 대통령은 31일 “사드(THAAD) 배치는 절차적 정당성을 밟아야 한다”며 “시간이 조금 더 걸리더라도 미국이 이해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방한 중인 딕 더빈 미국 민주당 상원의원을 청와대에서 만나 “사드는 북핵 위협에 대비하기 위해 한국과 미국이 공동으로 결정한 것이며, 전임 정부의 결정이지만 가볍게 여기지는 않는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문 대통령은 “미국과 마찬가지로 한국에서도 민주적·절차적 정당성이 강력히 요구되고 있다”면서 “우선 환경영향평가가 제대로 이뤄져야 한다. 그리고 의회에서 충분한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지난 정부 결정에서는 이 두 과정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다”고 부연했다.

문 대통령은 특히 “지난 정부는 발표 직전까지 사드 배치를 국민에 알리지 않았고, 배치 결정 직전까지도 ‘요청도, 협의도, 결정된 바도 없다’는 이른바 ‘3노(NO)’ 입장으로 일관했다”며 “그러다 갑자기 사드가 배치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은 과연 사드가 효용이 있는 것인지, 비용분담은 어떻게 되는 것인지, 중국과의 외교를 어떻게 풀어갈 것인지 정부로부터 충분히 설명 듣기를 원하는 것”이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전날 사드 발사대 4기 비공개 반입에 대한 진상규명 조치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국내적 조치이며 기존 결정을 바꾸려거나, 미국에 다른 메시지를 전하려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말한다”고 했다.

이에 더빈 의원은 “사드가 주한미군을 지키기 위한 게 아니라 한국과 한국 국민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고, 문 대통령도 “그 말씀에 공감하고 다른 생각을 갖고 있지 않다”고 화답했다.

더빈 의원이 “적법 절차를 통해 논의하는데 시간이 얼마나 걸리겠는가”라고 묻자 문 대통령은 “국회 논의는 빠른 시간 내에 진행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환경영향 평가는 시간이 소요되더라도 민주주의 국가라면 치러야할 비용”이라고 말했다. 

◇ 한·미 정상회담에 미칠 영향은

문재인 대통령이 31일 딕 더빈 미국 민주당 상원 원내총무를 만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드(THAAD) 배치가 지연될 수 있다고 언급한 것은 박근혜정부가 맺은 기존 합의를 곧이곧대로 이행하지는 않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사드 배치 논란은 6월 말쯤 열릴 것으로 예상되는 한·미 정상회담에도 적잖은 파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한·미 국방 당국은 사드 배치를 올해 안에 완료하겠다는 방침을 대선 전부터 밝혀왔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전인 지난 2월에도 한민구 국방부 장관과 제임스 매티스 미국 국방부 장관은 서울에서 회담을 갖고 이런 입장을 재확인한 바 있다. 지난 4월 26일에는 사드 장비 중 일부가 기습적으로 성주골프장에 배치되기도 했다.

한·미 당국이 대선 직전에 이런 움직임을 보인 것은 사드 배치를 기정사실화하겠다는 의도로 해석됐다. 정권교체가 이뤄지더라도 사드 배치 결정을 번복할 수 없도록 ‘알박기’를 했다는 것이다. 대선 후보 신분이었던 문 대통령도 당시 강한 유감 입장을 표시한 바 있다.

다만 문 대통령은 박근혜정부가 맺은 기존 한·미 합의를 존중하겠다는 입장을 함께 밝혔다. 섣불리 사드 배치를 철회해 한·미 관계를 파국으로 몰고 가지는 않겠다는 뜻이다. 청와대 역시 사드 배치와 관련해 ‘재배치’나 ‘재합의’라는 표현은 피하고 있다. 배치를 강행하려는 미국과 반대하는 중국 양측을 모두 배려하는 포석이다.

하지만 논란이 커질수록 사드 반대 여론이 높아질 게 분명하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사드 배치 과정 전반에 대한 고강도 조사가 불가피하다. 실제로 배치 과정에 심각한 절차적 문제가 드러날 경우 문재인 대통령은 배치를 철회하라는 진보 진영의 압력에 직면할 수 있다. 한·미 간 외교적 갈등도 피할 수 없다.

우정엽 세종연구소 객원연구위원은 31일 “한·미 상호방위조약을 보면 미국은 자기들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전략 자산을 들여올 수 있다. 조약문에 한국이 이런 권리를 미국에 ‘허여(許與)한다’고 명시돼 있다”면서 “한국이 국회 비준을 거쳐 사드 배치를 결정하겠다고 하면 미국 입장에서는 ‘비준 사안이 아니다’라는 말을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 전초전은 이달 말쯤으로 전망되는 한·미 정상회담이다. 상황에 따라서는 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사드를 두고 얼굴을 붉히는 상황이 벌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을 벼르고 있어 첫 한·미 정상회담이 순탄치 않을 것이라는 예상은 이미 많았다.

여기에 더해 정상회담을 실무적으로 지휘할 외교부 장관이 사실상 공석이다. 청와대는 정상회담 준비기간을 고려해 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자를 조기에 내정했다. 하지만 위장전입과 거짓말 논란 등 각종 의혹이 불거지면서 인사청문회를 통과할 수 있을지 불투명해진 상태다. 청문회 절차가 순조롭게 진행되더라도 실제 취임은 이달 중순에나 가능하다.

태원준 조성은 이종선 기자 wjt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