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씨 딸 정유라씨는 이화여대 특혜 입학 의혹에 처음 휩싸였던 3년 전 SNS에 “부모를 원망하라. 돈도 실력이다”라고 적었다. 박근혜정부 국정농단 사건을 파헤치는 과정에서 뒤늦게 주목을 받은 이 글은 “바람이 불면 촛불은 꺼진다”는 자유한국당 김진태 의원의 발언과 함께 광장민심을 불붙인 기폭제였다. 정씨는 뒤늦게 “너무 어렸다”며 용서를 구했다.
정씨가 31일 오전 4시8분(한국시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공항에서 탑승한 대한항공 KE926편은 오후 2시40분쯤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비행기나 선박을 우리 영토로 간주하는 속지주의 원칙에 따라 정씨에 대한 검찰 체포영장은 이미 기내에서 집행됐다. 정씨는 모든 승객이 기내에서 나간 뒤 마지막으로 내렸다. 입국심사와 검역은 기내에서 이뤄졌다.
정씨는 오후 3시15분 비행기와 연결된 인천공항 탑승교에서 잠시 멈춰 기자들을 만났다. 예상 밖으로 많은 말들을 쏟아냈다. 덴마크에서 구금 연장을 추가로 시도하지 않고 한국 송환에 응한 이유에 대해 “너무 오래 혼자 있는 아이 때문에 오해를 풀고 상황을 해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검찰 특별수사본부와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적용한 혐의들에 대해서는 어머니 최씨에게 그 책임을 돌렸다.
3년 전 SNS 글에 대해서도 입을 열었다. 정씨는 2014년 12월 3일 “능력 없으면 너희 부모를 원망해. 있는 우리 부모 갖고 ‘감 놔라 배 놔라’ 하지 말고. 돈도 실력이야. 불만이면 종목을 갈아타야지. 남을 욕하기 바쁘니, 아무리 다른 것을 한들 어디 성공하겠니”라고 적었다. 이대 입시비리 의혹이 불거진 박근혜정부 2년차였다.
이 글은 박근혜정부 국정농단 사건의 전말이 속속 드러나면서 전국의 광장이 촛불로 뒤덮였던 지난해 10월 19일 다시 주목을 받았다. 촛불을 횃불로 만든 계기였다. 당시 정씨는 독일과 덴마크 등 유럽에서 은신하고 있었다.
정씨는 뒤늦게 돌아온 한국에서 “그때 내가 너무 어렸다. 욱하는 마음으로 썼다. 죄송하다. 지금 생각하면 내 아이가 그런 말을 들으면 속상할 것 같다”고 말했다. 다만 이 발언에서 이대 학생이나 승마 선수처럼 자신의 특혜와 SNS 글로 실질적 고통을 받았을 피해자가 특정되지 않았다.
정씨는 그동안 한국 송환을 거부하고 있었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지난해 12월 업무방해 등의 혐의로 정씨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받고 인터폴에 적색수배 발령을 요청했다. 정씨는 지난 1월 1일(현지시간) 밤 덴마크 북부 올보르그에서 현지 경찰에 불법체류 혐의로 체포됐다. 하지만 정씨는 도피, 은신, 구금 상태에서 한국 송환을 거부해 검찰 특별수사본부, 박영수 특검, 국회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하지 않았다.
정씨는 인천공항에서 곧바로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으로 압송됐다. 검찰은 최씨 등과 공모해 삼성에서 뇌물을 받은 혐의(제3자 뇌물수수), 이대 입시·학사 과정에서 특혜를 받은 혐의(업무방해), 돈을 신고하지 않고 독일로 반출해 주택 등을 구입한 혐의(외환관리법 위반)를 정씨에게 추궁할 계획이다.
김철오 기자, 인천공항=윤성호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