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나 명예살인' 남성 2명, 터키 법정서 무죄 판결

입력 2017-05-31 14:09
2012년 추모객이 하툰 수루쿠씨의 7주기를 맞아 헌화하고 있다. 수루쿠씨는 2005년 동생 아일란에게 살해당했다. 게티이미지

가족의 명예를 해쳤다며 누이를 살해한 쿠르드계 독일인 2명이 터키 법정에서 무죄로 풀려났다. 이들은 누이가 서양식 생활에 빠졌다는 이유로 살해한 것으로 전해졌다. 명예살인 문제로 터키 여성들의 인권 문제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하툰 수루쿠(23·여)씨는 2005년 독일 베를린의 한 버스정거장에서 남동생이 쏜 총알 세 발을 머리에 맞고 숨졌다. 수루쿠씨는 겨우 16살에 가족들이 정해준 남자와 결혼해야 했다. 수루쿠 씨의 형제들은 그녀가 이혼 후 다른 남자를 만나기 시작했으며 전통 관습을 거슬러 머리에 천을 두르지 않았기 때문에 죽였다고 밝혔다. 이 사건은 당시 독일 전역을 충격에 빠뜨렸다.

수루쿠씨는 독일-쿠르드계 이민자의 딸로 독일에서 자랐다. 그러나 그녀의 아버지는 수루쿠씨를 학교에 나가지 못하게 하고 터키에 있는 친척들의 마을로 돌려보냈다. 이후 그녀는 겨우 16살에 사촌과 강제로 결혼해야만 했다. 남편과 이혼 후 그녀는 베를린으로 돌아와 아들을 낳은 후 부모님 집에서 미혼모로 지냈다.

수루쿠씨를 죽인 막내 동생 아이한은 징역 9년형을 선고 받고 독일 감옥에 수감 중이다. 하지만 그녀의 다른 형제인 무트루(38)씨와 아파르슬란(36)씨는 두 번이나 석방됐다. 2006년 독일 법정에서 석방됐고, 30일(현지시간) 터키 이스탄불 법정에서는 증거부족으로 무죄 선고를 받았다.

무트루씨는 누이의 죽음에 연루됐다는 점을 자백했다. 그러나 증인이 법정에 나타나지 않아 증거 부족으로 처벌할 수 없었다. ‘여성 살해를 반대하는 모임(Initiative Against Femicide)’의 변호사인 레일라 수렌씨는 “결정적인 증언을 하기로 한 아이한의 과거 여자친구가 이스탄불 법정에 나타나지 않았다”고 밝혔다. 수렌씨는 “이 법정에서는 검사만 홀로 하툰 수루쿠씨를 위해 말했다. 그녀는 죽은 후 다시 홀로 남겨졌다”고 말했다.

사건 담당했던 검사들에 따르면 수루쿠씨의 형제들은 “누이가 머리 수건을 쓰지도 않고, 독일 남자를 만나는 걸 보면서 모욕감을 느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 독일인 판사는 아이한 수루쿠씨의 살인행위를 두고 “냉혹한 사형집행”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이후 독일 정부의 요청으로 무트루씨와 아파르슬란씨는 터키 당국에 의해 체포됐으며 지난해 이스탄불로 옮겨졌다. 하지만 이들은 30일 결국 두 번째 무죄 선고를 받았다. 이 사건은 독일에서는 민감한 사안이지만 터키에서는 관심을 거의 받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터키에서의 명예살인에 대한 정확한 수치는 추산하기가 어렵다. 터키 정부의 2008년 추산에 따르면 2003년부터 2008년까지 1000명 넘는 여성이 명예살인으로 죽었다. 여성 살해를 반대하는 모임에 따르면 지난해에는 328명의 여성이 살해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모임의 변호사인 이펙 보즈쿠르트씨는 터키의 유력 정치인들은 여성의 처우에 대해 관심이 없다고 말했다. 2014년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은 “여성의 역할은 어머니에 국한되며 남자와 평등한 권리를 가질 수 없다”고 말한 바 있다. 또 에르도안 대통령의 발언이 있기 전 터키 부총리 한 명은 “여성은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곳에서 크게 웃어선 안 된다”고 말한 적도 있다. 보즈쿠르트씨는 “정치인들이 여성 차별적 발언하는 것을 방송에서 보는 남편은 아내에게 자신만의 인생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게 될 것”이라며 터키의 여성 처우 문제를 꼬집었다.

구자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