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아산병원, 태아수술 본격화 신호탄 쐈다

입력 2017-05-31 10:52

[사진] 건강을 되찾아 지난 24일 퇴원한 쌍둥이와 산모 정담(오른쪽)씨 부부. 서울아산병원 제공
서울아산병원 의료진이 중증질환 태아를 임신 중 엄마 뱃속에서 내시경수술로 치료해 건강한 모습으로 태어나게 하는 태아치료시대의 본격 개막을 알리는 신호탄을 쐈다.

서울아산병원은 태아치료센터 원혜성·이미영 교수(산부인과)팀이 쌍태아수혈증후군에 걸려 유산 또는 사산이 우려되는 일란성 쌍둥이 태아를 대상으로 지난 1월 1일 엄마 배꼽을 통해 자궁 안에 태아내시경을 넣어 레이저 치료를 시행하고, 최근 건강한 모습으로 분만시키는데 성공했다고 31일 밝혔다.

쌍태아수혈증후군은 일란성 쌍둥이의 10∼15%에서 나타나는 합병증으로 태반 내에서 연결된 혈관을 통해 한쪽 태아에서 다른 쪽 태아로 혈액이 공급되면서 한쪽 태아는 혈액이 부족해 성장이 늦어지고 양수가 적어지는 현상이 나타난다. 반대로 다른쪽 태아는 혈액을 너무 많이 받아 양수과다증과 심부전을 보이며 생사의 위기를 맞이하게 되는 질환이다.

쌍태아수혈증후군은 치료하지 않고 그냥 두면 90% 이상에서 쌍둥이 모두 사망하는 질환으로 쌍둥이 임신의 가장 치명적인 합병증으로 알려져 있다.

자연임신으로 쌍둥이들을 갖게 된 산모 정담(32)씨는 임신 16주차였던 지난 2016년 12월 29일에 갑자기 찾아온 복통으로 산부인과를 찾아 검사를 받았고, 뱃속 쌍둥이들은 쌍태아수혈증후군을 진단 받았다. 한쪽 태아는 성장이 뒤쳐졌고 방광도 보이지 않았다. 다른 태아는 상대적으로 양수가 많아지고 심장기능도 떨어져 두 아이 모두 위험한 상황이었다.

입원 한 지 3일이 지났지만 차도가 없어 담당의사는 태아내시경을 이용한 레이저치료가 가능한 서울아산병원 태아치료센터의 의료진들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정담씨는 지난 해 12월 31일에 서울아산병원으로 옮겨졌다.

서울아산병원 태아치료센터 원혜성 교수와 의료진들이 다시 한 번 태아들의 상태를 확인한 결과, 한 시도 지체할 수 없이 뱃속의 태아들을 살리기 위한 응급치료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의료진들의 분주한 준비 속에 새해가 밝았다. 2017년 1월 1일 오전 9시 새해 첫 해가 뜨자마자 서울아산병원 신관 6층 산부인과 수술실에서 서울아산병원 태아치료센터 원혜성 교수와 이미영 교수가 태아내시경을 이용한 레이저치료를 시작했다.

양쪽 태아를 연결하고 있는 혈관들을 없애기 위해 정담 산모의 배꼽을 통해 직접 자궁 안까지 내시경을 넣고 초음파를 보면서 양쪽 태아를 연결하고 있는 혈관들을 없애기 시작했다. 태아내시경에 연결된 레이저를 이용해 혈관 사이에 흐르는 혈액을 응고시켜 태아간의 혈류 연결을 차단하는 방법이다.

양수과다증상을 보이는 태아 쪽의 양수를 추가적으로 빼주는 치료로 마무리해 한 시간 동안의 시술이 성공적으로 끝났고, 쌍태아수혈증후군이 완치된 태아들의 상태는 급격히 호전되었다.

쌍둥이들의 분만 예정일은 6월 14일이었다. 하지만 조기진통이 왔고 쌍둥이들은 엄마 뱃속에서 35주를 채웠다. 5월 10일 제왕절개 분만을 시행하였고 건강한 남자 일란성 쌍둥이가 태어났다.

1월 1일 새해 첫 날 엄마 뱃속에서 새로운 생명을 얻게 된 쌍둥이는 가정의 달 5월 축복 속에서 부부의 새 식구가 되었다.

정담씨는 “쭈쭈 많이 먹고 쑥쑥 자라라는 의미로 ‘쭈쭈’, 쭈쭈 옆에 또 생긴 축복 같은 아기라는 의미로 ‘또또’라는 태명이 붙여진 뱃속의 아이들이 잘 크고 있는 줄 알았는데 갑자기 위험하다고 했을 때 남편과 함께 무사히, 건강을 되찾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던 기억이 난다”며 당시를 회고했다.

몸무게 2㎏(첫째)과 2.2㎏(둘째)으로 태어난 쌍둥이들은 신생아 집중치료실에서 2주 정도의 관찰 기간이 끝나고 지난 24일 건강하게 퇴원했다.

원혜성 교수(태아치료센터 소장)는 “뱃속 쌍둥이에 쌍태아수혈증후군 같은 중증의 질환이 발견되더라도 조기에 치료하면 완치가 가능해져, 최근 고령과 난임으로 쌍둥이 임신이 많은 임산부들에게 희망이 되고 있다”며,

“정담 산모처럼 아기를 지키기 위한 산모의 의지와 사랑을 접할 때마다 태아치료에 대한 의지가 높아진다. 아기들이 건강하게 출산하는 좋은 결실을 맺어 기쁘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기수 의학전문기자 ks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