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대통령 재판에서 한바탕 웃음이 터졌다. 박근혜정부 ‘비선 실세’ 최순실씨 측 이경재 변호사가 증인으로 출석한 이상영 전 한국마사회 부회장에게서 검찰 강압조사에 대한 증언을 유도하는 과정에서였다.
이 전 부회장은 30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부장판사 김세윤) 심리로 서울법원청사에서 열린 박 전 대통령과 최씨의 4차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했다. 그는 박근혜정부에서 2년 동안 부회장 겸 말산업본부장을 지낸 마사회 임원 출신이다. 최씨 딸 정유라씨에 대한 삼성그룹 승마 지원 의혹과 관련한 증언을 위해 법정에 섰다.
검찰은 이 전 부회장에게 박근혜정부에서 말산업이 국정농단의 도구로 악용된 과정을 캐물었다. 반면 이 변호사의 신문 분위기는 조금 달랐다. 이 변호사는 신문 초반부터 검찰의 강압수사 여부를 이 전 부회장에게 물었다.
-변호인(이하 이경재 변호사): 증인 2016년 11월 검찰에서 조사를 받았죠.
-증인(이하 이상영 전 부회장): 예.
-변호인: 날짜가 기억납니까.
-증인: 2016년 11월 12일입니다.
-변호인: 그날 몇 시쯤 검찰청에 가셨습니까.
-증인: 저녁 7시40분 검찰청에서 조사를 받았습니다.
-변호인: (수사과정 확인서를 꺼내며) 이곳에 서명한 기억이 납니까.
-증인: 예.
-판사: 증거기록 몇 쪽을 제시한 것입니까.
-변호인: 1754쪽입니다. (증인을 향해) 여기를 보면 검찰청 조사가 오후 7시50분부터 시작됐습니다. 그래서 날밤을 새고 그 다음날 새벽 4시10분까지 조사했습니다. 힘들지 않았습니까.
-증인: 힘들었죠.
-변호인: 여기 진술 내용을 보면 박원오(전 대한승마협회 전무)에게 들은 내용뿐인데 이렇게 오래 걸렸습니까.
-증인: 저는 처음부터 올림픽 지원을 (2016년 브라질) 리우올림픽이라고 생각해 그 위주로 답변했습니다. 그런데 중간에 (2020년 일본) 도쿄올림픽 지원계획이(지원계획 이야기가) 나왔어요. 마사회에 대한 것(지원)을 저는 검토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변호인: 74세인 것으로 압니다. 밤에 조사를, (오후) 7시50분부터 시작해 꼬박 밤을 새고 조사를 끝낸 시점이 새벽 4시42분. 그때 맑은 정신으로 답했다고 말할 수 있겠어요?
-증인: 정신은 맑았습니다. 리우올림픽을 생각하면서 말하다가 나중에 도쿄올림픽이(도쿄올림픽 이야기가) 나와 조금 착각했었습니다.
이 변호사는 여기서 검찰의 강압적인 조사가 있었는지 이 부회장에게 물었다. 하지만 이 전 부회장의 답변은 예상을 빗나갔다.
-변호인: 담당검사에게 야간 조사를 해도 좋다고 동의한 적이 있습니까.
-증인: 저는 (야간조사를 놓고) 가타부타 이야기한 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조사를 하다 보니 검사가 며칠째 날밤을 샜기 때문에 오히려 좀 측은하게 보였습니다.
이 순간 방청석에서 한바탕 웃음이 터졌다. 이 변호사는 곧바로 “어르신다운 답이다”라며 흐름을 끊고 신문을 이어갔다.
이 전 부회장은 이날 법정에서 2014년 11월 세계일보의 ‘정윤회 문건’ 보도 전부터 최씨가 박근혜정부 비선 실세라는 소문이 승마계에서 떠돌았다고 증언했다. 또 박 전 대통령이 정씨를 아낀다는 말을 박원오 전 대한승마협회 전무로부터 들었다고 말했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