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3부(주심 박병대 대법관)는 30일 횡령과 배임 혐의로 기소된 이 전 회장의 상고심에서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1·2심을 거치면서 배임 혐의가 무죄 선고된 상태에서 유죄로 인정됐던 횡령 혐의마저 무죄 취지의 선고가 나온 것이다.
재판부는 “피고인의 비자금 조성액과 사용내역 등을 고려하면 비자금 중 상당부분을 회사를 위해 지출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피고인이 비자금 사용 내역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못했다고 해서 개인적으로 사용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어 “피고인이 불법영득의사를 갖고 취득한 재물의 규모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이 정한 5억원 이상이라는 사실이 증명됐다고 볼 수도 없다”고 했다.
이 전 회장은 2009년 1월∼2013년 9월 회사 임원들에게 지급되는 역할급 수당 27억5000만원 중 11억6000만원을 돌려받아 비자금을 조성한 뒤 경조사비 등에 쓴 혐의(특경가법상 횡령)로 기소됐다. 또 KT가 이 전 회장의 친척과 공동 설립한 ㈜OIC랭귀지비주얼(현 KT OIC) 등 3개 벤처업체의 주식을 비싸게 사들이게 해 회사에 103억5000만원의 손해를 끼친 혐의(특경가법상 배임)도 받았다.
1심은 “비서실 운영자금이나 회사에 필요한 경조사비, 격려비용 등에 쓴 만큼 개인적 이익을 위한 것으로 볼 수 없다”며 횡령 혐의를 무죄로 판단했다. 배임 혐의도 “당시 KT의 투자 결정은 합리적 의사결정에 따른 것이었다”는 이유로 무죄가 인정됐다.
그러나 2심은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비자금을 조성했고, 자신의 필요에 따라 개인 자금과 유사하게 비자금을 함부로 사용한 점이 인정된다”며 횡령 혐의를 유죄로 보고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배임은 1심과 마찬가지로 무죄 선고가 됐다.
대법원은 횡령 혐의에 대해 “원심이 법리를 오해했다”며 다시 재판하라고 판결했다. 배임 혐의는 원심 판결대로 무죄가 확정됐다.
지호일 기자 blue5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