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올들어 9번째 미사일 발사…배경은 '김정은 신년사'

입력 2017-05-29 08:40
지난 22일 북한 조선중앙TV가 공개한 중장거리 탄도미사일 북극성-2형 발사 장면. 뉴시스

북한이 또 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 갈수록 잦아지고 있다. 이달 들어서만 벌써 세 번째다. 이번엔 G7 정상회의에서 '대북 제재 강화'에 합의한 직후 미사일을 발사했다. 통상 각종 기념일이 몰려 있는 4월에 집중되던 핵·미사일 도발의 수위를 올해는 5월에 더욱 높여가는 중이다. 북한 미사일에 담긴 메시지를 국제사회가 과연 제대로 해석하고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합동참모본부는 29일 새벽 북한이 강원도 원산 일대에서 스커드 미사일로 추정되는 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고 밝혔다. 발사 시각은 새벽 5시 39분쯤이며, 방향은 동쪽을 향해서였다. 합참은 "발사된 미사일의 비행거리는 약 450㎞로 한·미 당국이 정밀분석 중"이라며 "스커드 계열 탄도미사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일본 방위성은 북한의 탄도미사일 추정 발사체가 일본의 배타적 경제수역(EEZ) 내에 떨어진 것으로 파악했다. 

북한은 이달 들어서만 세 번째 탄도미사일 시험발사를 감행하며 도발 수위를 끌어올리고 있다. 앞서 지난 14일 평안북도 구상 일대에서 액체 연료 기반의 중장거리 탄도미사일 '화성-12'형 시험발사에 성공했고, 일주일 만인 지난 21일에는 평안남도 북창 일대에서 고체 연료 기반의 중거리 탄도미사일 '북극성-2형' 시험발사에 성공했다.

북한이 올 들어 탄도미사일을 발사한 것은 이번을 포함해 9차례나 된다. 미사일 발사를 강행할 때마다 국제사회의 대북 압박에 대한 '저항'으로 해석되곤 했다. 어떤 제재에도 굴하지 않겠다는 '마이웨이' 의지 표현이란 거였다. 상대가 강하게 나오면 더 강한 대응으로 맞서는 건 북한의 전형적인 대외 전술 중 하나다. 

북한이 그런 의지를 읽어주길 바라는 대상은 늘 미국이었다. 미국을 상대로 체제 보장과 경제적 이득을 얻어내기 위해 '말썽장이'처럼 행동하는 것으로 국제사회는 북한의 도발을 이해해 왔다. 하지만 최근의 도발 행태는 오랜 기간 유효했던 이런 해석에 의문을 갖게 한다. 미국에 새로운 트럼프 정부가 들어섰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선제타격'부터 '대화와 협상'까지 여러 신호를 보냈지만 북한은 일관되게 도발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1월 1일 조선중앙TV가 보도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신년사 장면. 뉴시스

이에 갈수록 잦아지는 북한의 미사일 도발은 오직 '한 가지 목적'을 위한 것이라는 새로운 해석이 설득력을 얻게 됐다. 군사전문가들은 북한이 북극성-2형과 화성-12형 개발을 통해 미국 본토를 공격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개발 중인 것으로 본다. 거듭된 탄도미사일 시험 발사는 핵을 실어 보낼 수 있는 발사체 기술을 끌어올리는 데 유일한 목적이 있을 뿐, 달리 해석할 메시지는 더 이상 담겨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는 귀순한 태영호 전 주영 북한 공사가 지난 3월 국민일보 인터뷰에서 언급한 내용과도 맥이 닿는다. 태 전 공사는 당시 북한이 미사일 4발을 한꺼번에 발사한 것(3월 6일)과 관련해 "전략로켓군에 대한 김정은의 유일적 영도체계를 수립하는 시험이며, 전략로켓 관리도 군(軍) 총참모부가 아니라 김정은 자신에게 있다는 점을 과시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북한은 미사일 개발이 진전되면서 군 총참모부가 관할하던 '전략로켓군'을 김정은 직할로 변경하고, 사령관도 대장으로 격상시켰다. 전략로켓군의 성과는 이제 '김정은의 업적'이 된 것이다. 당시 북한이 미사일 발사 후 내놓은 발표문에서 태 전 공사는 네 가지 특징을 추려냈다.

“첫째, 핵전투부 훈련이란 표현을 썼다. 실전에선 이번에 발사한 미사일에 핵탄두를 탑재해 쏜다는 것이다. 둘째, 북한 전략로켓군에 대한 김정은의 유일적 영도관리체계를 수립하는 시험이라고 했다. 이번에 미사일을 발사한 전략로켓군이 총참모부가 아닌 김정은 아래에 있게 됐음을 말한 것이다. 

셋째는 발사 장소다. 얼마 전 발사한 곳은 황해도, 지난해는 동해안 원산 부근이었다. 북한은 미사일 발사에 확고한 자신이 없을 때, 공중 폭발이 우려될 때는 동해안에서 한다. 이번에는 평안북도 동창리 발사장에서 일본을 향해 4발을 쐈다. 이제 불발 사고는 없다는 자신감을 보여주기 위해 동창리에서 쏜 것이다.

넷째, 주일 미군기지 타격능력을 보여주는 시험이라고 했다. 이렇게 콕 찍어서 발사 목적을 강조한 것은 드문 일이다. 북한 대남전략에서 가장 중요한 건 전쟁 시 미군 증원무력을 차단하는 일이다. 만일 차단에 실패해 미군이 참전할 경우 북한은 일본을 때리려 한다. 미군을 혼자 감당할 수 없으니 중국을 끌어들여야 하는데, 중국을 끌어들이는 방법으로 일본을 치는 것이다. 이번 미사일 시험은 그게 가능하다는 걸 보여준 것이다.”

태 전 공사는 북한의 목적을 이렇게 분석했다.

“이제 북한은 김정은의 올해 신년사대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핵무력 강화를 계속할 것이다.“김정은 정권에 제일 취약한 분야는 김정은의 장기집권 명분과 정체성이다. 김정은은 앞으로 30∼40년간 아버지나 할아버지처럼 북한을 이끌고 세습통치를 뿌리내리는 갈림길에 놓여 있다. 이것을 단단히 다져줄 방도를 핵과 미사일로 본다. 할아버지 아버지가 못한 핵보유국 지위를 젊은 김정은이 5∼6년 안에 한·미와 협상해서 얻는다? 그렇게 되면 김정은은 위대한 민족 지도자가 된다. 이를 통해 장기집권 토대를 마련하려는 것이다."

김정은의 장기집권을 위해선 '업적'이 필요하고, 김정은은 그것을 '핵과 미사일'에서 찾고 있으며, 이런 의지를 밝힌 것이 올해 신년사였다. 결국 북한은 지금 '핵을 실어 날릴 수 있는 미사일 기술의 완성'을 향해 달려가고 있을 뿐, 이를 넘어서는 다른 전략적 의미를 발견하기 어려운 상황이란 해석이 가능하다. 북한과의 대화를 통한 핵·미사일 문제 해법을 모색하고 있는 문재인정부의 대북 정책은 북한의 일관된 도발로 시험대에 오르게 됐다.

태원준 기자 wjt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