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의역 9-4 승강장'에 붙은 故 이한빛 PD 부친의 편지

입력 2017-05-28 16:27

'구의역 참사' 1주기를 맞아 사고 현장에 추모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눈에 띄는 건 지난해 10월 열악한 노동환경을 견디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고(故) 이한빛 PD의 부친이 남긴 편지였다.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 사망한 ‘컵라면 청년’ 김모(당시 19세)군을 추모하는 페이스북 페이지에는 ‘구의역 9-4 승강장’ 사고현장에서 진행된 추모행사와 1주년을 맞아 다시 나붙은 포스트잇 사진들이 잇따라 올라오고 있다.


그 중에도 이한빛 PD 부친이 쓴 것으로 추정되는 편지 사진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이 사진은 지난 27일 한 네티즌이 촬영해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것이다.

사진 속 편지에는 “하늘나라에서 우리 아들 한빛이랑 만나서 행복하게 잘 지내길 바라. 남은 일(못다 이룬 꿈)은 우리가 열심히 노력해서 이루어줄 테니 부디 편안하게 지내기 바라오. 젊은이가 희망과 꿈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회를 우리가 만들어줄게”라고 적혀 있다.

이 PD는 tvN 드라마 ‘혼술남녀’의 조연출로 일하면서 열악한 드라마 제작 환경에 시달리다 지난해 10월 26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는 50여일 동안 이틀밖에 쉬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유족들은 CJ E&M 측의 사과와 재발 방지 대책을 요구했고, ‘이한빛 PD 사망사건 문제 해결을 위한 대책위’가 꾸려졌다. 한국PD연합회도 공식 입장을 통해 사과와 재발방지를 요구하면서 CJ E&M 측은 지난 5월 21일 ‘유가족과 대책위에 드리는 글’을 통해 공식 사과했다.

이 PD 부친의 편지를 본 많은 네티즌은 “제2의 김군을 막지 못했다”며 안타까워했다. 박원순 서울시장도 페이스북에 이 PD 부친의 편지를 게시하며 남다른 인연을 소개했다.


박 시장은 “전교조를 설립하다 해직돼 오랫동안 고생하셨던 한 선생님을 병상에서 만났다”며 “선생님은 작년에 아드님을 하늘로 떠나보내야 했다. 그가 고(故) 이한빛 PD였다”고 썼다. 이어 “선생님이 다녀가셨던 구의역 9-4 승강장은 나에게도 가장 뼈아픈 곳”이라며 “사고 이후 근본 원인을 조사하고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지만 1년 동안 완전히 해결됐다고 말하지 못할 것 같다”고 했다.

“구의역 9-4 승강장 스크린도어는 내 평생의 좌표”라고 정의한 박 시장은 “부족함을 알려주는 동시에 나아가야 할 방향도 보여주고 있다. 수많은 김군의 꿈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또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천금주 기자 juju79@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