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정거림의 의미는 시간이 지나며 알게 됐다. 동기들과 달리 최 목사는 임지에 대한 걱정을 하지 않았다. 신대원 졸업을 앞두고 아버지는 “미리 언질을 해뒀다”며 상당히 조건이 좋은 교회 세 곳의 전임 부교역자 자리를 제시했다. 아버지의 동기나 절친한 선후배들이 담임목사로 있는 곳이니 지원만 하면 된다고 했다. 어렵지 않게 그 중 한곳에서 전임 부교역자 사역을 시작했다.
김지성(가명·35) 목사는 학부 동기인 최 목사와 다른 길을 걸었다. 친구의 전도로 신앙을 갖게 됐고, 고등부 담당 전도사의 권유로 신학대에 입학했다. 불신자였던 부모는 심하게 반대하며 경제적 지원을 일체 해주지 않았다. 학비 마련을 위해 휴학한 후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동기들에 비해 신대원 입학이 늦아졌다.
임지를 구하려 면접을 볼 때는 항상 부모의 직분에 대한 질문을 들었다. 어렵게 구한 임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부모가 불신자라고 밝혔을 때 시선은 곱지 않았다. “가족에게도 복음을 전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목회를 하려느냐”는 핀잔도 들었다.
‘부모가 중·대형교회 목회자인 목사는 성골, 장로·권사인 경우 진골, 일반 신자나 불신자인 경우 육두품.’ 신학생과 부교역자들 사이에서 이처럼 부모의 직분에 따라 계급을 나누는 ‘신골품제’가 오래전부터 우스갯소리처럼 통용되고 있다. 품계가 임지의 질(質)과 담임 목회자와의 관계 등 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여겨진다. 이에 따르면 최 목사는 성골, 김 목사는 욱두품 중 가장 낮은 1두품에 속한다.
하지만 최근 만나 확인한 최 목사와 김 목사의 행보는 품계의 차이가 무색하다는 것을 보여줬다. 최 목사는 여전히 아버지의 동기가 담임으로 있는 교회에 속해 있다. 어려움에 부딪힐 때마다 아버지의 조언과 지원을 구한다. 스스로의 목회 스타일을 찾으려 노력중이지만 어느새 아버지의 설교방식까지 모방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에 자괴감이 들기까지 한다고 했다.
김 목사는 끊임없는 기도와 각고의 노력 끝에 부모와 형제들을 전도했다. “가족들에게 신앙을 전하며 누구보다 불신자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어떤 태도로 전도를 해야 하는지도 알게 됐다”고 말했다. 담임목사는 성도들 앞에서 ‘각박한 부모의 마음을 녹여 하나님 앞으로 인도한, 누구보다 복음전파에 대한 의지가 강한 사람’이라고 그를 칭찬하며 전도 사역을 전담하게 했다.
한국교회 안에는 골품제를 유지하려는 이들이 존재한다. 구약의 제사장들이 혈연에게 대를 이었다며 목회 세습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개인의 노력과 성과를 무시한 골품제는 신라의 멸망을 재촉했다. 진골들은 신분의 차이를 이유로 지식계급이었던 육두품의 사회적 진출을 막았고 이에 불만을 품은 육두품과 지방세력이 왕권에 저항하며 신라의 멸망을 촉진했다.
예수의 제자들은 귀족이 아니었다. 어부와 세리 등 출신성분은 다양했지만 담대하고 확고한 믿음을 갖고 복음의 증인이 됐다. 한국교회 역시 그들이 전한 복음의 수혜자다.
이사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