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훈이 2005년 발표한 단편소설 ‘언니의 폐경’에서 생리를 잘못된 방식으로 묘사했다는 지적이 불거졌다. 12년 전 소설에 나오는 대목이 뒤늦게 소셜미디어에서 조명되며 논란은 거칠어졌고, 페미니즘 논쟁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소설가 손아람도 “김훈은 무의식적 금기를 극복하지 못했다”며 비판 대열에 합류했다.
김훈은 ‘언니의 폐경’으로 2005년 제5회 황순원문학상을 수상했다. 이 작품에는 자매가 함께 차를 타고 가던 중 조수석에 앉아 있던 언니가 갑자기 생리를 시작해 당황해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김훈은 극중 자매의 모습을 이렇게 묘사했다.
- 얘, 어떡하지. 갑자기 왜 이러지...
- 왜 그래, 언니?
- 뜨거워. 몸 속에서 밀려나와.
나는 갓길에 차를 세웠다. 자정이 지난 시간이었다. 나도 생리날이 임박해 있었으므로 핸드백 안에 패드를 준비하고 있었다. 나는 룸 라이트를 켜고 패드를 꺼내 포장지를 뜯었다. 내 옆자리에서 언니는 바지 지퍼를 내리고 엉덩이를 들어올렸다. 나는 언니의 엉덩이 밑으로 바지를 걷어내주었다. 언니의 팬티는 젖어 있었고, 물고기 냄새가 났다. 갑자기 많은 양이 밀려나온 모양이었다. 팬티 옆으로 피가 비어져나와 언니의 허벅지에 묻어 있었다. 나는 손톱깎이에 달린 작은 칼을 펴서 팬티의 가랑이 이음새를 잘라냈다. 팬티의 양쪽 옆구리마저 잘라내자 언니가 두 다리를 들지 않아도 팬티를 벗겨낼 수 있었다. 팬티가 조였는지 언니의 아랫배에 고무줄 자국이 나 있었다. 나는 패드로 언니의 허벅지 안쪽을 닦아냈다. 닦을 때 언니가 다리를 벌려주었다. 나는 벗겨낸 팬티와 쓰고난 패드를 비닐봉지에 담아서 차 뒷자리로 던졌다.
해당 글은 지난 23일부터 소셜미디어를 중심으로 확산됐다. 네티즌들은 이 글을 두고 “생리에 무지한 남성이 쓴 판타지”라고 비난하고 있다. 생리혈은 ‘뜨겁게’ 밀려나오지 않을 뿐더러, 생리대는 속옷에 부착하는 형태로 제작돼 있기 때문이다. 여동생이 성인 여성인 언니의 생리혈을 닦아주었다는 묘사도 공감을 얻지 못했다.
김훈의 여성 관념이 드러난 과거 인터뷰도 재조명되고 있다. 2000년 당시 ‘시사저널’ 편집국장이었던 김훈은 ‘한겨레21’ 인터뷰에서 “페미니즘은 못된 사조” “남자들보다 더 뛰어난 여자를 본 적 없다” 등의 발언을 했다. 다음은 인터뷰의 일부.
최보은: 대학원 졸업한 딸을 두신 걸로 아는데 페미니즘 기질은 없나요?
김훈: 우리 딸? 그런 못된 사조에 물들지 않았어요.
최보은: 어쩌다 김훈 선배는 그런 못된 사조에 물드셨어요. 마초…. <시사저널>엔 여기자들도 많은데 그렇게 말하세요? 페미니즘 같은 것에 물들지 말라?
김훈: 걔들은 가부장적인 리더십을 그리워하는 것 같더라고.
최보은: 네? (웃음) 이런 말 기사화해도 상관없으세요?
김훈: 괜찮아. 아무 상관없어. (웃음)
김규항: 근데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
김훈: 여자들한테는 가부장적인 것이 가장 편안한 거야. 여자를 사랑하고 편하게 해주고. (웃음) 어려운 일이 벌어지면 남자가 다 책임지고. 그게 가부장의 자존심이거든. 난 남녀가 평등하다고 생각 안 해. 남성이 절대적으로 우월하고, 압도적으로 유능하다고 보는 거지. 그래서 여자를 위하고 보호하고 예뻐하고 그러지.
이 인터뷰에서 김훈은 남성우월주의, 통일 반대, 재벌세습 인정 등으로 해석될 수 있는 발언을 했다. 이후 시사저널 기자 일부가 항의 사표를 냈고, 여성계를 중심으로 비난이 일면서 김훈은 시사저널을 떠났다.
손아람은 25일 페이스북을 통해 김훈의 무의식에 내제된 ‘남성성’을 지적했다. 손아람은 “작가가 되기 위해 김훈을 거치지 않을 도리가 없고 70년대 이후 태어난 작가라면 배움, 극복, 타도의 과정을 거치겠으나 오래 돌고 있는 이런 식의 묘사에 대한 문제의식은 조금 결이 다르다”며 “김훈은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는 대신 무생물적 대상화를 한다. 욕망에 따른 시선을 의도적으로 거부하고 대체 이걸 왜 묘사하는데? 라는 생각이 들 때까지 신체를 해부한다”고 적었다.
이어 “그러나 김훈은 이상하게도 남성의 성기와 성기능에 대한 해부적 무생물화를 해보지 않았다. 아마도 무의식적 금기를 극복하지 못했을 터. 나는 그게 그의 위장된 허무주의적 세계관이, 사실은 마지막까지 포기할 수 없는 남성성의 의미 위에 입각해 있는 증거라고 늘 생각했다”고 지적했다.
박상은 기자 pse021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