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는 초등학교 6학년이었다. 자신감이 없고 스스로 할 일을 못했다. 까칠해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했다. 집중도 잘하지 못해 병원을 찾았다.
H의 엄마는 자신의 과거에 비하면 거의 완벽하게 교육 환경을 만들어 주었는데도 공부도 안하고 빈둥거리는 딸을 이해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자신으로서는 엄마의 역할을 충분히 다 해왔다고 믿고 있었다.
과목 별로 과외도 시키고 비싸다는 영어학원도 아낌없이 보내 주었고, 어려서부터 기죽이지 않으려고 필요한 장난감이나 옷은 최고급으로 해 주었다. 가난해서 학교에서도 대접 받지 못하고 친구들로 부터도 무시당했던 자신의 전철을 아이가 되밟는 것이 싫어서 였다. 딸인 H가 자신처럼 자라는 것이 정말 싫었다.
H의 엄마는 시골에서 가난한 집안의 맏딸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무능했으며, 드세고 생활력이 강한 어머니가 집안을 이끌었다.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만난 어머니는 혼전에 H의 엄마를 임신, 어쩔 수 없이 원치 않는 결혼을 했다.
이 때문에 H의 할머니는 H의 엄마가 어릴 때부터 ‘네가 내 인생을 망쳤다’며 원망하며 냉혹하고 호되게 다루었다. 비난이나 욕지거리를 듣는 건 다반사였고 걸핏하면 화풀이 대상이 돼 맞기도 했다. 다른 형제들에 비해서 의붓딸 같은 존재로 자라났다. 그리고 나이가 들어서는 취직을 해 동생들과 친정 식구를 먹여 살리다시피 했다.
이런 가난과 설움이 한이 되어 자식만큼은 잘 키우고 싶었다. 그래서 아이가 원하는 걸 다 들어 주었는데, 막상 H는 사랑받지 못했다고 느끼고 엄마를 원망했다. 무엇이 이런 인식의 차이를 가져 왔을까?
H의 엄마는 물질적으로는 자신의 어머니와 정 반대로 아이에게 해 주었지만 정말 중요한 ‘감정의 교류’를 할 줄 몰랐다. H의 엄마는 아이가 어릴 때 살갑게 안아주지도 않았고, 눈을 맞추고 대화할 줄도 몰랐다.
예를 들면 학교에서 친구와 다투고 와서 화가 나 씩씩거릴때 H의 엄마는 아이를 도와 주고 싶었지만 어찌 할 바를 몰랐다. 아이의 감정을 빨리 전환시켜 주는것이 최선이라고 느껴서 “그런 일은 빨리 잊어버리는게 좋아, 엄마와 쇼핑갈까?” 라거나 “좋은 쪽으로 생각해라”라고 반응했다. H의 엄마로서는 최선의 위로 방법이었지만 H는 자신의 감정을 엄마가 ‘무시한다’고 느꼈다.
엄마는 아이의 아픈 곳을 어떻게 긁어 줘야 할 지, 아이를 이해하는 따뜻한 말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랐다. “그런일이 있었다니 정말 화가 났겠구나. 엄마도 화가 나는데”라는 말만 해주었어도 아이는 엄마에게 이해 받는다는 느낌을 가졌을 것이다.
그러면 H는 자신의 감정을 적절히 표현하고 나아가 자기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는 아이가 되었을 것이다. 부모로부터 감정을 수용 받아본 경험이 없는 사람은 부모가 되어서도 아이의 감정을 무시하게 되기 쉽다. 의도하지 않게. H의 엄마처럼.
그러면서도 H의 엄마는 늘 자신이 없고 아이에 대해 걱정스럽고 불안하기만 했다. 그러니 조그만 일에도 노심초사하며 사소한 잘못에도 호되게 야단을 치고 감정이 폭발했다. 그런 면에서도 친정어머니의 전철을 되밟고 있었다.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깨닫지 못하고 있었을 뿐.
H의 엄마와 같은 오류는 아주 흔하게 본다. 아이는 자신과 다르게 키우고 싶고 자신의 상처를 물려주고 싶지 않아서 노력하지만 정작 중요한 감정의 양식은 비슷하게 자식에게 되물리는 것이다. 자신과 부모의 관계가 어땠는지 되돌아 보는 것이 자신과 아이와의 관계를 풀어나가는 열쇠가 된다.
이호분(연세누리 정신과 원장·소아청소년 정신과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