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송과 인터뷰로 버틴 정유라의 '덴마크 5개월'

입력 2017-05-25 09:52 수정 2017-05-25 09:55

덴마크에 구금돼 있던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씨(21)가 현지 검찰의 한국 송환 결정에 불복해 제기했던 항소심을 24일(현지시간) 자진 철회했다. 덴마크 검찰은 한국 법무부와 협의해 30일 이내에 정씨를 한국으로 보내겠다고 밝혔다. 정씨는 지난 1월 1일 오후(현지시간) 인터폴 수배 중 덴마크 올보르에서 체포됐다. 이후 강제 송환 절차에 불복해 소송을 이어왔다.

정씨의 항소심 철회는 체포된 지 144일 만이다. 5개월 가까운 ‘버티기’를 스스로 접은 것은 고등법원 재판에서도 1심의 송환 판결을 뒤집기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인 듯하다. 지난 5개월간 덴마크에선 정유라씨를 둘러싸고 여러 사건이 있었다. 그를 변호하던 현지 변호사가 돌연 사망하는가 하면 정씨는 몇 차례 인터뷰와 법정 증언을 통해 심경을 밝히기도 했다.

◇ 1월1일= 덴마크 경찰, 정유라 체포

정씨가 덴마크에서 검거된 것은 현지시간으로 지난 1월 1일 밤 10시쯤이었다. 제보를 받은 경찰이 덴마크 북부 올보르시의 한 주택에서 체포했다. 혐의는 불법 체류였다. 당시 검거된 인원은 모두 5명이다. 정씨와 20대 남성 2명, 60대 여성 1명, 그리고 2015년생 남자아이. 이 아이는 정씨의 아들이었다.

한국 경찰청은 한국시간으로 2일 오전 7시 이 같은 내용의 국제형사경찰기구(인터폴) 전문을 접수했다. 경찰은 특검팀에 바로 통보했고, 특검팀은 법무부 외교부 경찰 등 관계기관과 협조해 송환 작업에 나섰습니다. 덴마크 당국에 긴급인도구속을 요청했다. 정식 범죄인 인도를 청구하려면 시간이 오래 걸리니 구금 상태를 유지해 달라는 거였다.

덴마크 경찰은 불법 체류 혐의자를 최장 72시간 구금할 수 있다. 한국 요청을 받아들여 정씨 구금이 이뤄졌다. 하지만 정씨는 이에 불복해 소송을 거듭하며 송환을 지연시켰다. 인터폴에 요청했던 ‘적색수배’가 발령됐다면 바로 강제 압송을 할 수 있었지만, 적색수배령이 내려지기 직전에 정씨가 체포돼 적색수배에 준하는 절차를 밟을 수 없었다.

◇ 1월2일= 체포 상태서 국내 언론 인터뷰

정유라씨가 지난 1월 2일(현지시간) 덴마크 올보르 법원에서 4주 구금 판결을 받기 직전 한국 기자들과 만났다. 비교적 차분한 목소리로 적극적인 해명을 했다. 그는 유럽 행적과 관련해 “덴마크에는 9월 말에 왔다. 독일비자로 나와 있고, 집이 독일에 있어서 2주 전 독일에 갔다 왔다”고 했다.

한국에 갈 생각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아이와 있을 수 있다면 보육원에 있든지, 병원에 입원해 있든지 상관없다”고 답했다. 삼성에서 구입한 말은 어디 있느냐는 질문에 “삼성이 차랑 말이랑 가져간다고 해서 알겠다고만 했다. 현재 내가 한국에서 가져온 어린 말 1필만 남았다”는 답변을 내놨다.

이어 ‘박근혜 대통령의 세월호 7시간에 대해 엄마에게 들은 게 있느냐’는 물음에는 “그 당시 임신 중이어서 엄마와 사이가 틀어져 연락을 전혀 하지 않았다. 나는 신림동에서 따로 살았다. 다만 주사 아줌마 백실장님은 누군지 알 것 같다. 차은택씨도 한 번 봤다”고 했다.


◇ 1월13일= 덴마크 교민들 “정유라 송환하라” 촛불시위

덴마크와 스웨덴의 한국 교민 수십명이 ‘정유라 즉각 송환, 구속수사’를 촉구하는 촛불집회를 13, 14일 이틀간 열었다. 정씨가 수감돼 있던 올보르 구치소 앞에서 열린 집회는 스웨덴 교민 임지애(34)씨가 제안해 이뤄졌다. 임씨는 국민일보 인터뷰에서 “많은 의견이 있었는데 올보르 구치소 앞으로 장소를 결정했다”며 “정유라씨의 신속한 송환과 구속 수사 촉구하기 위한 자리”라고 말했다.

◇ 1월31일= 특검 “정유라 없어도 이대 비리 입증 가능”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정유라 송환을 집요하게 추진했다. 인터폴에 적색수배를 요청했고, 1월 1일 정씨가 덴마크에서 체포된 뒤에는 즉각 법무부를 통해 송환 절차를 밟았다. 그러나 정씨 송환 불복 소송을 내며 버티면서 수사 기한이 다가오자 1월 31일 “정유라씨 조사 없이도 이화여대 입시·학사 특혜 의혹을 입증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규철 특검보는 기자들과 만나 “덴마크 법원이 정씨의 구금 기간을 2월 22일까지로 연장했다”며 “정씨가 없어도 관련 증거만으로 (의혹을) 충분히 입증할 수 있다”고 말했다. 특검팀은 지난해 12월 업무방해 등의 혐의로 정씨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받은 뒤 같은 달 27일 인터폴에 정씨에 대한 적색수배 발령을 요청했었다.

특검의 ‘입증 자신’은 현실로 이어졌다. 최경희 총장을 비롯한 이화여대 교수들이 줄줄이 구속기소됐다.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이들이 의혹을 부인하며 했던 말은 대부분 거짓으로 드러났다.

◇ 3월17일= 정유라 변호인 돌연 사망

정유라씨의 현지 변호인 피터 마틴 블링켄베르 변호사가 지난 3월 17일 갑작스럽게 숨졌다. 46세인 블링켄베르 변호사는 덴마크 남부 랑엘란 로하스의 자택에서 갑자기 사망했다. 구체적인 사망 원인은 알려지지 않았고, 과로사로 추정됐다. 블링케베르 변호사는 검찰 출신의 경제범죄 및 돈세탁 전문 '거물급 변호사'였다.

블링켄베르가 오후에 숨을 거둔 이날 오전 덴마크 검찰은 정씨의 한국 송환을 결정했다. 정 씨와 블링켄베르 변호사는 검찰의 송환 결정에 반발해 법원에 이의를 제기하고 소송에 나서겠다며 법정투쟁을 공식화한 상태였다. 블링켄베르 변호사는 당일 언론 인터뷰에서 "검찰의 이번 결정에 대해 법원에 이의를 제기해 법정에서 따질 것"이라며 "소송 방침은 이미 오래전에 결정된 것"이라고 말했었다.


◇ 4월24일= “한국 가면 아들 뺏길까 두렵다” 옥중 인터뷰

지난달 19일 덴마크 올보르 지방법원은 정씨가 제기한 송환 불복 소송을 기각했다. 한국으로 송환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정씨 측은 이에 불복해 고등법원에 항소했다. 길게는 1년까지 이어갈 수 있는 장기 소송전에 돌입했다. 그리고 닷새 만인 지난달 24일 덴마크 옥중에서 현지 언론인 엑스트라블라뎃(Ekstrabladet)과 인터뷰를 했다.

정씨는 인터뷰에서 “내 아들이 가장 큰 대가를 치르고 있다. 한국에 들어가면 (애 아빠에게) 아들을 빼앗길까 두렵다”고 말했다. 그는 “아들을 일주일에 1시간씩 두 번밖에 못 만난다. 아들에게는 엄마도, 아빠도, 할머니도 아무도 없다. 아이는 아무 이유도 알지 못한다”고 했다.

이어 어머니 최순실씨가 연루된 국정농단 사태에 대해선 아무것도 모른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정씨는 “박근혜 (전) 대통령과 어머니(최순실)의 부패 스캔들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아는 게 없다. 뭘 말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나는 다른 나라에 있고 엄마는 한국에 있다. 엄마가 하는 것을 내가 다 알 수 없다”고 주장했다. 또 어머니 최순실씨에 대해 “내 엄마다. 나이가 드신 엄마 모습을 보면 마음이 좋지 않다”며 “아무도 진실을 알지 못한다”고 했다.

정씨가 제기한 항소심 공판은 6월 8일에 열릴 예정이었다. 이를 보름가량 앞두고 정씨는 5월 24일(현지시간) 돌연 소송을 포기했다. 5개월 가까이 버티던 그가 항소심을 철회한 이유는 고등법원 재판에서도 1심의 송환 판결을 뒤집기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정씨가 한국에서 기소돼 실형 선고를 받을 경우 덴마크 올보르 구치소에 수감돼 있었던 기간은 복역한 것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한국의 정권교체 또한 정씨의 심경 변화에 영향을 줬을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국정농단 사건 재수사를 언급하는 등 국내 상황이 갈수록 더욱 불리하게 돌아가자 시간을 끌어도 실익이 없다는 판단을 내렸을 수 있다. 법정에서 박 전 대통령과 최 씨가 나란히 출두해 재판을 받은 모습도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태원준 기자 wjt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