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에 구금돼 있던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씨(21)가 현지 검찰의 한국 송환 결정에 불복해 제기했던 항소심을 24일(현지시간) 자진 철회했다. 덴마크 검찰은 한국 법무부와 협의해 30일 이내에 정씨를 한국으로 보내겠다고 밝혔다. 정씨는 지난 1월 1일 오후(현지시간) 인터폴 수배 중 덴마크 올보르에서 체포됐다. 체포된 지 144일 만에 '송환'이 기정사실화됐다.
국정농단 사건을 수사한 박영수 특검은 당초 "정유라씨를 반드시 송환해 조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었다. 정씨의 '버티기'로 송환 조사는 무산됐지만 그에게는 이미 여러 가지 혐의가 특정돼 있다. 정씨는 체포영장이 발부된 터라 30일 안에 귀국하면 공항에서 바로 체포된다. 곧바로 검찰 조사와 사법처리 절차가 진행될 전망이다.
특검이 정씨 체포영장에 적시한 대표적 혐의는 '업무방해'였다. 이화여대 입학 및 학사 행정에 부정과 비리를 초래해 업무를 방해했다는 것이다. 당시 이규철 특검보는 "체포영장에 기재된 범죄 사실만으로도 적색수배 요건이 된다"고 말했다. 적색수배는 체포영장이 발부된 중범죄 피의자에게 내리는 국제 수배다. 특검이 구체적인 혐의 사실을 밝히진 않았지만 범죄가 가볍지 않음을 시사한 것이었다.
이화여대는 지난해 체육특기자로 입학한 정씨에게 입시 과정과 학사관리 등에서 부당한 특혜를 줬고, 이는 관련자 구속 및 기소로 이어졌다. 총장과 학장을 비롯한 이화여대 교수들의 재판이 진행되고 있다. 업무방해죄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5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이 내려질 수 있다.
기소된 류철균(51·필명 이인화) 교수는 정씨에게 학점 특혜를 준 혐의를 받고 있다. 독일에 체류해 기말시험을 치르지 않은 정씨 대신 조교들이 답안지를 작성해 끼워 넣은 사실이 특검 수사에서 확인됐다. 정씨도 이와 관련한 처벌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학사 부정 외에 입시 비리도 정씨가 지원 과정에서 관련 사실을 알고 적극적으로 부정입학 행위에 가담했다면 처벌받을 가능성이 있다.
특검은 박근혜 대통령, 삼성그룹, 최순실(61·구속기소)씨가 연루된 제3자 뇌물 혐의 수사와 관련해서도 정씨가 연루된 부분을 파헤쳤다. 삼성전자와 최씨의 독일 현지 법인 코레스포츠(비덱스포츠의 전신)의 컨설팅 계약을 사실상 뇌물로 봤고, 정씨는 승마선수 지원을 명목으로 한 이 계약으로 혜택을 본 유일한 선수였다. 당시 정씨는 민법상 성인(19세 이상)인 때여서 의사능력, 책임능력 등이 모두 인정되기에 "내가 결정하지 않았다"는 등의 이유로 법적 책임을 회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정씨의 국외 재산 의혹도 특검의 도마에 올랐었다. 정씨는 독일에 시가 4억원이 넘는 본인 명의 주택 등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자금의 성격과 조달 과정 규명에 따라 외국환관리법 위반 혐의나 국외로의 재산도피 관련 혐의가 추가될 수 있다.
최순실씨의 변호인인 이경재 변호사는 지난 1월 정씨가 덴마크에서 체포된 뒤 기자간담회에서 "최씨가 딸이 귀국할 경우 어떤 혐의를 받게 될지를 가장 걱정하고 있다"고 말했었다. 이 변호사는 당시 "최씨가 '유라가 거기서 어떻게 되느냐' '여기 오면 어떻게 되느냐' 하는 것을 많이 물었다"고 했다.
정씨는 지난 1월 30일 덴카크 올보르 지방법원에서 열린 심리에 출석해 "(부정입학 및 학점 특혜 의혹) 혐의 자체가 말도 안 된다"고 주장했다. 삼성의 지원을 둘러싼 제3자 뇌물 혐의와 관련해서도 "나는 삼성과 관련된 일을 아예 모른다. 계약서에 사인도 하지 않았다"면서 "개인적으로 K스포츠 돈을 쓰지 않았고, 어머니가 주신 돈을 썼다"며 혐의를 거듭 전면 부인했다.
태원준 기자 wjt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