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층 여유로웠다. 간간이 웃음도 터져 나왔다. 지난 일곱 번의 추도식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풍경이 곳곳에 펼쳐졌다. 문재인 정부에서 맞이한 첫 번째 노무현 전 대통령 추도식은 다들 슬퍼했지만, 한결 편안해졌고, 모두가 희망을 떠올리는 자리였다.
노무현 전 대통령 추도식은 23일 오후 2시 경남 봉하마을에서 거행됐다. ‘슬픔과 희망의 공존’ ‘눈물과 웃음의 화음’ ‘미안했던 마음에 찾아온 치유’…. 분위기를 표현하려면 이런 식의 어색한 비유가 불가피했다. 진중했고 많은 이가 눈물을 흘렸다. 그럼에도 느껴진 ‘여유’를 통해 참석자의 마음속 응어리가 조금을 풀어졌음이 감지됐다.
삭발한 모습으로 무대에 오른 노건호씨는 발언에 앞서 "탈모로 인해 삭발하게 됐다”며 자신의 머리 상태를 먼저 얘기했다. 건호씨는 "최근 심하게 탈모 현상이 일어났는데 탈모반이 하나가 아니라 여러 군데라 방법이 없었다. 본의 아니게 속살을 보여드리게 됐다"면서 "병원에 물어보니 별다른 원인 없이 오는 경우 있다고 한다. 좀 스트레스 받은 것 외에 아무 일 없으니 걱정마시라"고 말했다.
이어 "전국의 탈모인들에게 심심한 위로와 동병상련의 정을 느낀다. 저는 이제 (머리카락이) 다시 나고 있다. 다시 한 번 위로의 말을 드린다"며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러자 참석자들 사이에서 폭소가 터져 나왔다. 권양숙 여사와 김정숙 여사도 이 순간만큼은 웃음을 보였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이 인사말을 하며 “현직 대통령으로서 이 자리에 참석하는 것은 오늘이 마지막”이라고 말하자 장내에서 “아우~”하는 탄성이 나왔지만, “이제 당신을 온전히 국민께 돌려드립니다. 반드시 성공한 대통령이 되어 임무를 다한 다음 다시 찾아뵙겠습니다”라는 말이 이어지자 환호와 박수 터져 나왔다.
추도식장은 미리 준비한 3000개 의자가 부족했다. 봉하마을 초입부터 사람들로 가득 차 추도식장 안으로 들어가기가 쉽지 않을 정도였다. 역대 최대 규모였다. 추도식 시작 30분 전인 오후 1시30분쯤엔 마을 진입로에서 1㎞ 떨어진 곳부터 시민 행렬이 이어졌다.
단상에는 활짝 웃으며 오른손을 흔드는 노무현 전 대통령 ‘입간판’ 놓였다. 문재인 대통령이 단상에 올라 인사말을 시작하자 두 사람이 같이 서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시종 진중한 표정이었다. 간혹 눈가를 닦았다. 김정숙 여사도 검은색 의상에 검은색 뿔테안경을 쓰고 차분한 표정을 지었다. 노건호씨가 아버지를 추모할 때 중간 중간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건호 씨는 아버지에 대한 진한 그리움을 표현했다. 그는 "아버님께서 살아계셨다면 이런 날에 막걸리 한 잔 하자고 하실 것 같다"며 "아버님이 사무치게 그리운 날이다. 모든 국민들께 감사를 드린다"고 말했다. 이 말을 듣고 어머니 권양숙 여사는 눈물을 흘렸고 문 대통령은 한 숨을 쉬며 하늘을 쳐다봤다.
태원준 기자 wjt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