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15년 동안 장애인을 노예로 부린 장애인 학대 사건에 대해 집행유예를 선고하자 장애인 단체가 반발하고 나섰다.
대구지법 상주지원(판사 강영재)은 지난 16일 지적장애 3급 A씨(54)를 2002년 12월쯤부터 사건이 밝혀진 지난해 2월 22일까지 월 10만원 가량의 임금을 주면서 약 6만평 규모의 벼농사와 소 10마리 규모의 축사일을 하도록 한 김모(65·농업)씨에게 근로기준법 위반죄 등을 물어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강 판사는 판결문에서 “시킨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팔아버리겠다’고 협박한 사실과 방송국의 취재에 응했다는 이유로 ‘여기서 제대로 살기 힘들 거다’라고 협박한 것은 협박죄에 해당되고, 일을 시키고도 임금을 제대로 주지 않은 점을 근로기준법위반과 최저임금법위반으로 인정된다”고 판시했다.
그러나 강판사는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는 행위로서 죄질이 좋지 않아 엄한 처벌이 필요하다”면서도 “피고인이 혐의를 인정하고 있고, 미지급 임금 등을 피해자에게 보냈다는 점 등을 인정해 형의 집행을 유예한다”고 양형의 이유를 밝혔다.
이에 대해 (사)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는 22일 “이번 판결은 ‘신안 염전사건’과 마찬가지로 개인의 인간성을 말살한 반인권적인 사건에 대해 법원이 여전히 낮은 인권인식을 가지고 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라고 질타했다.
연구소는 또 “문재인 대통령이 장애인 복지 정책으로 ‘장애인 학대 무관용 원칙을 적용 하겠다’고 밝혔지만 취임이후 내려진 첫 장애인 학대 관련 판결에서 법원은 여전히 ‘관용’을 했다는 점에서 장애인단체와 장애인 당사자에게 큰 실망과 좌절을 안겨 주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장애인학대에 대한 처벌규정을 두고 있는‘장애인복지법’,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이 언급조차 되어 있지 않아 수사기관과 법원이 법에 무지한 것이 아니면 법이 무용지물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는 “판결의 내용뿐만 아니라 장애를 가진 이 사건의 피해자에 대한 지원과정에도 많은 문제점이 드러났다”면서 “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학대 사건에서 피해 장애인은 국선변호사의 도움이나 진술조력인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등 체계적인 지원도 받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사건의 피해자 역시 수사와 재판 절차에서 변호사를 비롯한 조력인의 도움을 전혀 받지 못했고, 본인은 폭행과 협박 등 피해사실을 호소함에도 불구하고 장애가 있어 진술이 정확하지 않다는 이유 등으로 결국 판결에 반영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학대피해장애인지원센터 관계자는 “장애인 학대를 관용하지 않겠다는 대통령 공약에 큰 기대를 가졌으나 사법부의 장애인 인권인식은 아직 갈길이 먼 것 같다”며 “피고인이 피해자에게는 한 마디 말도 없이 돈을 통장으로 입금했다는 점을 반영해 집행유예를 선고한 것을 보니 과연 비장애인 대상의 사건이었다면 이렇게 접근했겠는지 의문이 든다”고 따졌다.
학대피해장애인지원센터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지원을 받아 장애인 학대 사건의 피해자들의 피해 회복과 지역사회 완전 자립을 지원하고 있는 기관이다.
정창교 기자 jcgyo@kmib.co.kr
“문재인대통령 시대 장애인학대 사건 첫 판결 실망” 대통령은 장애인학대 무관용, 법원은 15년 학대 집유
입력 2017-05-22 16:08 수정 2017-05-22 16: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