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세는 '걸크러쉬' 캐릭터…당찬 언니들이 뜬다

입력 2017-05-22 05:05

최근 각종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 등에서 '여자가 봐도 반할 만큼 멋진 여성'을 뜻하는 '걸크러쉬' 캐릭터가 자주 등장하고 있다. 보고 있자면 속이 시원하고 반전 매력을 가진 캐릭터에 시청자들은 환호를 보낸다.

그동안 드라마의 '공식'은 신데렐라 스토리, 출생의 비밀, 기억상실, 복수극 등이었다. 이 공식은 ‘여성스러움'이란 말로 표현되는 전형적인 수동형 여성상을 전제로 했다.

능력이 있지만 까칠한 재벌 3세와 그의 마음을 빼앗은 가난하고 지순한 여성의 사랑이야기(신데렐라), 청순하고 가녀리지만 잘 웃는 여성이 아픔을 겪는데 그 기억이 사라지면서 벌어지는 이야기(기억상실), 답답할 정도로 남에게 퍼주던 여성이 악역 캐릭터에게 당하고 나서 이를 갚아주는 이야기(복수극) 등이 안방극장을 채워 왔다.

뉴시스 제공

이런 공식이 복합적으로 뒤섞인 이야기를 우리는 '막장 드라마'라고 불렀다. 막장 드라마는 신랄한 비판을 받으면서도 반복해 재생산됐다. 처음엔 너무 당하기만 하는 주인공이 고구마 먹고 물 못 마신 것처럼 답답해 욕을 하지만, 결국엔 시원하게 복수하는 결말이 찾아올 것을 알기에 시청자는 채널을 고정시키곤 했다. 

하지만 '막장' 트렌드는 얼마 가지 못했다. 시청자가 달라졌다. 주인공이 애처롭게 당하는 '답답한 초반부'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SNS의 빠른 호흡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기존의 드라마 공식을 지루해 하고 있다.

tvN 드라마 ‘도깨비’에서 유인나(김선 역)는 귀에 쏙쏙 박히는 찰진 발음으로, 보는 이들이 당황해 할 만큼 솔직한 대사를 툭툭 내뱉었다. 

“저는 얼굴이 명함이에요. 얼굴에 딱 써있죠? 예쁜 사람”이라며 자신의 외모에 자신감을 뽐내고, "사장님이 안 보여도 열심히 하겠다"는 알바생 김고은에게 “안 보일 때 열심히 하면 사장은 몰라. 알바생, 놀아”라는 쿨한 멘트를 날렸다. 사장의 호의에 감사하는 김고은에게 “받을 거 받는 데 그렇게까지 감사해 하면 너 사람들이 우습게 본다”며 권리를 당당하게 누릴 줄 알아야 한다는 말도 했다.

KBS '아버지가 이상해' 방송 캡처

현재 방영 중인 ‘아버지가 이상해’에서 당찬 변호사 변혜영 역을 맡은 이유리도 '사이다'처럼 톡 쏘는 대사로 환호를 받고 있다. 지난 주 22회에서 그는 결혼하자는 류수영(차정환 역)에게 “한국 사회에서 결혼은 여자한테 아주 불리해. 한국에서 며느리는 카스트 제도에서 불가촉천민 같은 존재야”라고 말했다. "누구의 아내, 며느리, 엄마로 살아가기보다 그저 나를 위해 살고 싶다”고 덧붙였다.

이번 주 24회에서는 류수영을 좋아하는 여자 후배가 얄밉게 속을 긁자 “너 휴대전화니? 때와 장소를 못 가리게? 이거 그냥 배터리를 확 빼줄까?”라고 일갈했다.

JTBC '님과 함께2-최고의 사랑' 방송 캡처

예능도 마찬가지다. 1995년 데뷔한 김숙이 ‘따귀소녀’ ‘사천만 땡겨주세요’ 등으로 인기를 얻은 뒤 한동안 잠잠하다 다시 방송에서 인기를 얻는 것도 그의 걸크러쉬 매력이 알려지면서였다. ‘숙크러쉬(김숙+걸크러쉬)’ ‘숙므파탈(김숙+팜프파탈)’이란 말이 나올 만큼 그의 '당찬' 스타일은 물을 만났다.

김숙은 JTBC 예능 '님과 함께2-최고의 사랑‘에서 그동안 가부장사회 속 여성이 들어왔던 말을 가모장사회 관점에서 일종의 미러링을 시도하며 웃음을 유발했다. 

“결혼을 하면 남자가 조신하게 여자 집에 들어와서 살아야지, 어디 건방지게 집을 구하냐!” 
“어디 아침부터 남자가 인상을 써!” 
“남자가 조신하게 옷을 입어야지!” 
“남자가 돈 쓰는 거 아니야!” 등의 발언으로 ‘어디서 여자가’를 귀에 못이 박히게 들어왔던 여성들의 속을 뻥 뚫어줬다. 

또 KBS 예능 ‘언니들의 슬램덩크’에서는 남성의 전유물로 여겨져온 못질을 완벽하게 해내며 손수 테이블을 제작하는 모습을 통해 성 역할 고정관념을 깨기도 했다.

걸크러쉬 캐릭터가 대세로 떠오른 것은 여성이 불합리한 상황에 문제를 제기하며 목소리를 더욱 높이고 있는 시대 상황과 맞물려 있다. 성평등 인식이 높아질수록 걸크러쉬 열풍은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김지희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