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화 “염색? 본모습 가리고 싶지 않았다” 과거 인터뷰

입력 2017-05-22 05:00

21일 문재인 대통령이 발표한 인사는 한 사람 한 사람이 파격이었다. 그중에서도 강경화 유엔 사무총장 정책특보는 단연 돋보였다. 외교부 역사상 최초의 여성 장관 후보자, 외무고시가 아닌 첫 특채 출신, 유엔 최고위직에 오른 한국인, 여기에 카리스마 있는 외모까지 더해져 네티즌들의 관심이 집중됐다. 강 후보자의 인생이 담긴 5년 전 인터뷰도 소셜미디어에서 다시 확산되고 있다.

강 후보자는 2012년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세계인권도시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제네바에서 날아왔다. 당시 직급은 유엔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 부대표로, 사무총장이 임명하는 직급 중 두번째로 높은 사무차장보(ASG)였다. 

2012년 5월 19일 조선일보 인터뷰에 따르면, 강 후보자는 자신의 머리 스타일에 대해 “친정 엄마도 놀란다”고 했다. 당시에도 그는 자연스러운 은발의 커트 머리였다. 강 후보자는 “(친정 엄마가) 당신이 민망해 죽을 노릇이니 제발 염색 좀 하라신다”며 “2008년인가, 새해 결의 중 하나로 정한 게 염색 안 하기였다. 본모습을 뭔가로 가리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더라. 내가 일하고 있는 제네바는 워낙 다양한 인종에 머리 색깔이 천차만별이라 내 반백 머리에 아무도 개의치 않는다”고 말했다.

강 후보자는 1997년 외환위기 당시 김대중 대통령 당선인과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과의 통화를 통역하면서부터 외교가에 이름을 알렸다. 뛰어난 영어실력을 인정받아 1998년 외교통상부 국제전문가로 특채됐고 1999년 외교통상부 장관 보좌관을, 2000년 외교통상부 외교정책실 국제기구 심의관을 지냈다. 김 전 대통령이 1998년 미국을 방문했을 때 정상회담 통역을 맡기도 했다.


강 후보자는 “김 전 대통령께서 영어로 연설하는 것을 굉장히 좋아하셔서 그때 (영어) 연설문을 많이 썼다. (매사추세츠 주립대) 대학원에서 학위 밟을 때 지도교수님이 글쓰기를 아주 까다롭게 가르치셔서 그때 고생하며 연습한 것도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이어 “김 전 대통령께서 조리 있고 논리적으로 말씀하는 분이라 오히려 통역이 쉬웠던 것 같다. 대통령께선 늘 조그만 메모지 한 장을 손에 쥐고 계셨다. 그 안에 당신이 하실 말씀이 깨알같이 적혀 있다. 그거 한 장 가지고 세계의 리더들과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말씀을 이어가셨다”고 회상했다.

강 후보자는 유엔에 간 이유를 ‘여성 인권’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는 “국회의장실에서 국제담당비서관으로 일하던 1995년 베이징에서 열린 세계여성대회에 참석한 것이 계기”라며 “정부, NGO가 함께 꾸린 대표단의 대변인으로, 우리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전 세계에 알리는 등 2주 동안 정말 신나게 일했다. 그때 처음 내 문제가 나만의 문제로 끝나는 게 아니라 국제사회 전체의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 공동 의제(議題)를 세우고 새로운 규범을 만드는 일을 유엔이 한다는 걸 알게 됐다”고 말했다.

승승장구는 아니었다. 미국 매사추세츠대에서 커뮤니케이션 전공으로 석사·박사학위를 받았지만 한국에 돌아왔을 때 어느 대학도 받아주지 않았다. 강 후보자는 “5년간 보따리 강사 했다. 3남매 양육 때문에 직장 그만두고 1년간 전업주부로도 살아봤는데 나도 아이들도 별로 행복해지지 않길래 다시 일을 시작했다”고 털어놨다. 비고시 출신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진골이 아닌 데서 오는 소외감이 없었다면 거짓말”이라면서 “다만 평가라는 건 언제든 업무 수행 능력에서 온다고 믿었다. 열심히 노력했고, ‘잘한다’ 소리 들었다”고 답했다.

강 후보자가 정식으로 임명되면 70년 외교부 역사상 최초의 여성 장관이 된다. 강 후보자는 5년 전 ‘절망하는 20대’에게 이런 말을 남겼다.

“주제넘은 말이지만, 좀 더 길게 보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 100세 시대 아닌가. 조급해하지 말고 기량을 갈고 닦으며 기다려라. 어떤 실패도, 어떤 세월도 그냥 날아가지 않는다. 거름이 된다. 기회는 반드시 온다.”

박상은 기자 pse021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