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대행소 왱] “인간관계에 지쳤어요”…익명소통 즐기는 ‘팬텀족’

입력 2017-05-20 16:03


자신을 포장해야 하는 피상적인 대인관계에 염증을 느낀 청년들이 ‘익명 소통’에 나서고 있다. 특히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한 사회초년생을 중심으로 ‘팬텀(가면 쓴 은둔자)족’이 확산되고 있다. 이번 취재는 ‘직장생활을 시작하니 사람 만나는 데 지친다’는 독자의 의뢰로 시작했다.


입사 4개월 된 신입사원 이은철(31·가명)씨가 그렇다. 은철씨는 최근에 같은 대학 졸업생들이 모인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에 가입했다. 오픈채팅방에선 신분을 노출시키지 않고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이 방에 있는 40여명 모두 모르는 사람들이다. 닉네임도 언제든지 바꿀 수 있다. 은철씨는 “타인의 시선 때문에 억지로 웃고 떠드는 데 지쳐버렸다”며 “신분을 드러내지 않은 채 관심사가 비슷한 이들끼리 자유롭게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했다.


대학생 서수연(25·여)씨는 대학교 커뮤니티의 익명게시판(익게)에 자주 들어간다. 여기에 글을 올리면 게시자명이 ‘익명’으로 뜨고, 댓글을 다는 이들도 ‘익명1’ ‘익명2’로 적힌다. 수연씨는 “커뮤니티 게시판 중 익게가 가장 활발하다”며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신경 쓰지 않고 편하게 소통할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팬텀족의 증가는 ‘인맥이 넓어야 성공할 수 있다’고 여겨지는 사회분위기와도 맞물려 있다. 청년들이 인맥 형성을 위한 인간관계에 피로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대학내일 20대연구소가 지난해 실시한 설문조사(20대 남녀 643명 대상)에서도 10명 중 7명이 인맥 관리에 피로감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익명 소통 방에선 친해지기 위해 애쓸 필요도 없고, 멀어지기 위해 일부로 거리를 둘 필요도 없다. ‘친목활동을 거부한다’는 규정을 정해놓은 익명 소통 방도 있다.

부담 없이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다는 점도 익명 소통을 하는 이유다. 대표적인 게 ‘대나무숲’. 익명으로 고민거리를 적어 상담을 요청하면 다른 회원들이 댓글로 의견을 달아주는 곳이다. 페이스북에 ‘대나무숲’을 검색하면 학교, 직업 등 다양한 기준으로 구분된 ‘대나무숲’ 수십 개가 주르륵 나온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내 한 몸 챙기기도 힘든 팍팍한 하루를 살아가는 청년들에게 인간관계는 또 하나의 짐으로 다가오고 있다”이라며 “오프라인 인간관계에 염증을 느낀 청년들이 찾은 새로운 소통방법”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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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희 이용상 기자 이재민 디자이너 sotong20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