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테르테 "필리핀이 거지냐?"…EU 개발원조 거부

입력 2017-05-20 06:18
필리핀 정부가 유럽연합(EU)의 신규 개발원조금을 거절했다. 경제 지원을 대가로 한 서방세계의 내정간섭을 더는 용인하지 않겠다는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의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프란츠 예센 주필리핀 EU대사는 최근 “필리핀 정부가 유럽연합의 개발원조를 더 이상 받지 않겠다고 통보해 왔다”고 현지 언론 인터뷰에서 밝혔다. 유럽연합이 책정한 필리핀 신규 개발원조금 2억5000만 유로는 없던 일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결정은 ‘마약과의 전쟁’을 지속적으로 비판해 온 유럽연합과 거리를 두려는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의 의중이 담겨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18일(현지시간) 열린 기자회견에서 에르네스토 아벨리 필리핀 대통령궁 대변인은 “내정간섭으로 이어질 수 있는 개발원조금은 받지 않겠다”고 언급했다. 지난해 6월 두테러테 대통령 취임 이후 사형이 집행된 마약 중독자와 판매자는 9000명 정도다.

유럽연합과 국제사회는 두테르테 대통령에게 “인권유린을 멈추지 않으면 원조하지 않겠다”며 비판해 왔다. 하지만 두테르테 대통령은 “원조를 구걸하지 않겠다”며 “국제사회는 필리핀이 거지로 보이는가?”라는 말로 응수하며 서구 사회에 적대감을 표했다. 

지난해 9월 자신의 고향 다바오에서 연설을 할 때는 비속어와 함께 가운데 손가락을 펴 올리는 제스처를 취하며 자신을 비판하는 유럽연합을 모욕하기도 했다.

유럽연합의 원조를 뿌리친 필리핀 정부의 결정이 언제까지 계속될지는 미지수다. 유럽연합이 지원하는 액수는 만만찮았다. 필리핀에 개발원조금을 지원하는 국가 중 유럽연합은 5~6위에 해당하는 금액을 제공해 왔다. 

에르네스토 페르니아 필리핀 경제기획부 장관은 “이번 결정이 정책의 일환이라기 보다는 유럽연합의 비판에 대한 반감인 것 같다”며 “필리핀 정부가 유럽연합의 원조를 계속 거부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손재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