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봉투 만찬’ 부른 정부조직법의 한 줄…“검사로 보할 수 있다”

입력 2017-05-19 13:01

‘제6항에도 불구하고… 법무부의 보조기관 및 보좌기관은 검사로 보(補)할 수 있다.’

중앙행정기관의 설치와 조직을 다룬 정부조직법 제2조는 7항에 이런 문장이 있다. 법무부의 실장·국장에 ‘검사’를 앉힐 수 있다는 뜻이다.

‘제6항에도 불구하고’라는 단서가 말해주듯 이것은 ‘예외조항’이다. 6항은 ‘중앙행정기관의 차관보·실장·국장 및 이에 상당하는 보좌기관은 고위공무원단에 속하는 일반직 공무원 또는 별정직 공무원으로 보한다’고 돼 있다. 법무부도 중앙행정기관인데 예외적으로 ‘검사’가 그 자리를 맡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공포된 법률 1호는 이 정부조직법이었다. 그 때부터 법무부에는 이런 예외가 적용됐고, 70년이 흘렀지만 바뀌지 않았다. ‘검사로 보할 수 있다’는 조문은 ‘검사가 맡는 게 당연한’ 현실로 이어졌다.

현재 법무부에는 기획조정실, 법무실, 검찰국, 범죄예방정책국, 인권국, 교정본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 등 7개 실·국이 있다. 이 중 교도소를 관할하는 교정본부장만 빼고 모든 실·국장이 현직 검사로 채워져 있다. 차관도 검사다.

법무부 차관은 고검장급, 기조실장 법무실장 검찰국장 범죄예방정책국장 출입국본부장은 검사장급, 인권국장은 차장검사급 현직 검사가 관행처럼 임명돼 왔다. 그 밑에 있는 과장은 부장검사, 사무관은 일반 검사로 채워져 있다.

늘 수사인력이 부족하다고 말하는 검찰에서 수사를 지휘하고 담당할 검사를 대거 파견해 법무부의 일반 행정업무를 시키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 기형적 '관행'은 수사인력 부족을 넘어 더 큰 폐해를 낳고 있다. 감찰 조사가 시작된 '돈봉투 만찬'도 이런 관행이 만들어낸 법무부와 검찰의 관계에서 비롯됐다.

이영렬 전 서울중앙지검장과 안태근 전 법무부 검찰국장은 휘하 간부들을 거느리고 함께 저녁을 먹으며 100만원씩 든 돈봉투를 주고받았다. 이 전 지검장은 검찰 조직의 '넘버 2'에 해당하는 수사 지휘관이고 안 전 국장은 검찰 인사를 총괄하는 법무부 요직에 있었다. 

특별수사본부에서 수사를 담당한 이들과 그들을 평가하고 인사에 반영할 법무부 검찰국 간부들이 이런 자리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은 모두 '검사'라는 공통점, '한 식구'라는 동류의식이 있었기에 가능하다. 법무부와 검찰에서 '자연스럽게' 벌어지는 이런 자리가 사실 얼마나 '어색한' 것인지, 행정자치부와 경찰청의 관계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행자부는 경찰청을 산하 외청으로 두고 있지만, 두 기관은 행정 공무원과 경찰 공무원으로 신분이 확실히 구분되며 인사 교류도 거의 없다. 제도상 '문민' 공무원이 '제복' 경찰을 지휘·감독하는 구조로 돼 있다. 검찰을 지휘·감독하는 법무부가 검사들로 채워져 사실상 '한 솥밥'을 먹고 있는 상황과 확연히 다르다.

법무부의 기형적 인사 관행을 지적하며 '법무부 문민화'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다시 커지고 있다. 검사 인사를 관리하는 검찰국을 대검찰청에 보내고 나머지 법무 행정은 일반 공무원이 담당해 검찰 조직을 '문민 지휘' 아래에 둬야 한다는 것이다. 수사권과 기소권을 독점하고 있는 검찰 조직을 제대로 통제·관리하려면 중앙행정기관인 법무부를 사실상 검사들이 장악하고 있는 구조부터 뜯어고쳐야 한다는 논리다. 

법조계 관계자는 "대통령을 도와서 막강한 힘을 가진 검찰을 '문민 통제' 하는 것이 법무부의 임무인데, 그런 부처를 검찰이 장악하고 있다는 건 본말이 전도된 상황"이라며 "법무부와 대검찰청의 관계를 행정자치부와 경찰청의 관계처럼 바꾸면 법무부 문민화를 달성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고위 법관 출신의 한 변호사는 "법무부 문민화가 이뤄진다면 굳이 검찰 출신이 법무장관을 맡아야 할 이유도 없다. 검찰이 이를 시기상조라고 주장한다면 기득권을 놓지 않겠다는 것"이라고 했다.
 

태원준 기자 wjt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