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의 예능프로그램 ‘팬텀싱어’가 화제를 모으면서 우승자인 포르테 디 콰트로를 비롯해 여러 참가자들이 스타덤에 올랐다. 당시 심사위원 겸 프로듀서 6명 가운데 유일한 클래식 분야 전문가였던 베이스 손혜수(41) 역시 대중적 지명도를 얻었다.
오페라라는 장르의 특수성과 오랜 해외 활동 탓에 그는 가요와 뮤지컬 분야의 다른 심사위원들에 비해 대중에게 낯선 존재였다. 하지만 방송을 거듭할수록 한국을 대표하는 베이스 가운데 한 명인 그의 진가가 드러났고, 자연스럽게 팬들도 많이 생겼다. 그가 6월 1일 서울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리사이틀을 연다. 그동안 서울시향, KBS 교향악단의 신년·송년음악회나 국립오페라단의 ‘룰루’ 등 대규모 무대에 참여한 바 있지만 단독 공연은 처음이다.
17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팬텀싱어’의 제안을 받았을 때 하루 꼬박 고민한 뒤 출연을 결정했다. 자칫 아티스트의 순수성을 잃어버릴까봐 걱정이 좀 됐지만 새로운 분야를 경험하는 재미와 함께 대중에게 클래식을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고 밝혔다.
정통 클래식은 아니지만 오페라 뮤지컬 가요 등을 노래하는 남성 4중창의 순수한 하모니는 실제로 클래식 대중화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특히 ‘팬텀싱어’에 나왔던 유슬기·백인태·손태진·권서경 등은 방송 전엔 무명 성악가였지만 지금은 이들을 초청한 클래식 콘서트가 잇따라 매진을 기록하고 있다.
그는 “클래식이 대중음악은 아니지만 대중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만큼 ‘팬텀싱어’는 확실히 좋은 계기를 만들어줬다”면서 “성악가로서 오랜 경력에도 불구하고 내겐 한동안 ‘팬텀싱어’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닐 것을 안다. 하지만 ‘팬텀싱어’에 나온 후배들의 성장을 도울 수 있었던 것은 또다른 기쁨이다”고 피력했다. 게다가 “대학시절 유학 자금을 모으기 위해 축가 아르바이트를 많이 했는데, 그때 남성 사중창을 많이 해서인지 감회가 새롭기도 했다”고 웃었다.
성악가로서 그의 커리어는 매우 화려하다. 서울대 음대를 졸업하고 독일로 유학을 떠난 그는 베를린 국립음대에서 석사, 드레스덴 국립음대에서 최고연주자 과정을 졸업했다. 1998년 중앙음악 콩쿠르 우승을 시작으로 세계적 권위의 프랑스 마르세이유 콩쿠르, 오스트리아 모차르트 콩쿠르, 그리스 마리아 칼라스 콩쿠르에서 대상을 차지했다. 2003~2005년 독일 뉘른베르그 극장, 2005~2014년 독일 비스바덴 극장에서 전속 솔리스트로 활동하는 한편 유럽 주요 극장의 오페라와 콘서트에 단골로 출연해 왔다. 188cm의 큰 키에 잘 생긴 외모는 가창력과 함께 유럽 성악가들에게도 밀리지 않았는 그의 또다른 무기였다. 남자 성악가의 음역대 가운데 가장 낮은 베이스는 왕 역할이 많아서 오페라 연출가들은 장신을 선호하는데, 그는 동양인으로는 드물게 비주얼 면에서 손해를 보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가족이 있는 한국에서 좀더 시간을 보내기로 결정한 상황에서 운명처럼 ‘팬텀싱어’와 만나게 됐다. 그는 올하반기에 시작되는 ‘팬텀싱어’ 시즌2에도 심사위원으로 참가할 계획이다.
그는 “아이들이 더 크기 전에 한국에 적응하도록 하고 싶어서 귀국을 결정했다. 예전에는 유럽을 거점으로 한국 활동을 이어갔다면 지금은 그 반대가 된 셈”이라면서 “한국 사회는 마치 경주마가 달리는 것처럼 늘 분주하다. 이런 사회일수록 휴식을 위해 클래식이 필요하다”고 웃었다.
첫 단독 리사이틀에서 그는 슈베르트부터 볼프, R.슈트라우스, 라벨, 이베르, 라흐마니노프 등 작곡가들의 예술 가곡들을 들려줄 예정이다. 독일어·불어·러시아어를 바꿔가며 불러야 하는 노래들이다. 그는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는 오페라 아리아와 달리 가곡은 피아노 반주뿐이다. 하지만 그만큼 성악가의 순수한 예술성을 잘 보여줄 수 있다”며 자부심을 드러냈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