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위기' 닉슨·클린턴·트럼프…사유는 모두 '사법방해'

입력 2017-05-18 19:02

‘사법방해(Obstruction of Justice)’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탄핵' 가능성이 증폭된 건 제임스 코미 전 연방수사국(FBI) 국장의 '메모'가 폭로되면서였다. 뉴욕타임스가 16일(현지시간) 이 메모의 존재를 보도하자 트럼프 대통령의 ‘사법방해' 혐의를 입증할 증거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 잇따랐다. 

이에 온라인 도박사이트 등에선 '트럼프가 탄핵될 것'이란 쪽에 돈을 거는 사람이 급증했다. 영국 도박업체는 '트럼프 탄핵' 확률을 56%로 높여 잡았다. 이들이 이렇게 움직이는 이유는 '사법방해' 문제가 불거졌기 때문이다. 

20세기 이후 미국 대통령 중 탄핵 위기에 처했던 건 1974년 리처드 닉슨과 1999년 빌 클린턴 대통령뿐이며 두 사람에게 제기된 탄핵소추 사유는 모두 사법방해였다. 법치국가에서 수사와 재판 등 법 집행에 개입하고 훼방하는 행위. 미국은 이것을 가장 용납할 수 없는 대통령의 잘못으로 여기고 있는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코미 메모’에 트럼프 대통령이 FBI 수사를 방해하려 했다는 정황이 담겼다고 보도했다. 코미가 이끄는 FBI가 트럼프 대선캠프와 러시아의 거래 의혹을 수사하며 마이클 플린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까지 수사선상에 올려놓자 트럼프 대통령이 '수사 중단'을 요구했고, 메모에 그런 발언이 담겼다는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이 메모에 적힌 내용이 사실이라면 트럼프의 행위는 사법제도가 작동하지 못하게 훼방하거나 지체시킨 사법방해에 해당한다"고 전했다.



미국에서 사법방해는 중대한 탄핵 사유로 꼽힌다. 워터게이트 스캔들로 물러난 리처드 닉슨 대통령에게도 이 혐의가 적용됐다. 워터게이트 사건이 드러나자 FBI 수사를 방해했다는 이유로 하원 법사위에서 탄핵소추안이 통과됐고 본회의에 상정되자 닉슨은 서둘러 하야했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도 자신과의 성추문으로 수사를 받던 백악관 인턴 모니카 르윈스키에게 위증을 교사한 것이 사법 절차를 방해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를 이유로 탄핵소추안이 발의됐고, 의회에서 부결돼 가까스로 위기를 넘겼다.
 
역대 미국 대통령 중 실제 탄핵당한 사람은 없다. 17대 앤드류 존슨 대통령도 하원에서 탄핵안이 통과됐지만 상원에선 부결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탄핵소추가 이뤄질 경우 탄핵안이 상정되는 4번째 대통령, 가결될 경우 탄핵으로 쫓겨나는 최초의 미국 대통령이 된다. 

미국 대통령을 탄핵하려면 하원 의원 과반수 찬성과, 상원 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한다. 현재 미국 하원은 435석 중 238석, 상원은 100석 중 52석을 공화당이 차지하고 있다.

코미의 메모가 공개되면서 공화당의 분위기도 조금씩 바뀌고 있다. 공화당 소속 저스틴 아마시 하원 의원(미시간 주)은 “만약 코미 메모가 제기한 의혹이 사실이라면 탄핵 근거가 된다”고 말했다. 하원 정보위원회도 코미 전 국장을 직접 불러 메모에 기록된 내용이 사실인지 확인할 계획이다. 

여론도 들끓고 있다. 미국 여론조사 기관 퍼블릭 폴리시 폴링(PPP)이 지난 12~14일까지 성인 692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탄핵을 지지한다는 응답자가 48%, 반대한다는 응답자가 41%로 나타났다. 여론 조사 시점은 코미 메모가 공개되기도 전이다.

이택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