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전두환 신군부의 광주 무력진압으로 아버지를 잃은 1980년 5월 18일생 유족을 끌어안았다.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추도문을 낭독하며 오열한 유족을 예정에 없이 쫓아가 다독이고 위로했다.
문 대통령은 18일 광주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열린 제37회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마친 뒤 객석 가장 앞줄 중앙 지정석으로 돌아갔다. 곧바로 이어진 식순은 김소형씨의 추도문 낭독이었다. 김씨는 5·18 민주화운동 당시 신군부 계엄군의 총칼에 아버지를 잃은 유족이다.
전두환 신군부는 1979년 12월 12일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뒤 이듬해 5월 전국에서 일어난 민중항쟁을 무력으로 진압했다. 같은 달 17일 계엄령을 선포했고, 이튿날 광주로 공수부대를 투입해 항거하는 시민들에게 발포했다. 헬기에서 무차별 사격을 가한 증언과 증거도 나오고 있다.
김씨는 그날 밤 광주에서 태어났다. 당시 29세로 전남 완도에서 일했던 아버지는 딸의 출생 소식을 듣고 광주로 달려갔지만 결국 공수부대에 희생됐다. 김씨는 떨리는 손으로 종이를 들고 흐느끼며 추도문을 낭독했다. “철없었을 때 내가 태어나지 않았다면 아빠와 엄마는 지금도 행복하게 살아있었을 것이란 생각도 했다. 이제 당신보다 더 큰 나이가 되고 나서야 당신을 부를 수 있게 됐다”며 아버지를 불렀다.
문 대통령은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으며 김씨의 추도문을 들었다. 김씨가 추도문을 마치자 안경을 다시 쓰고 자리에서 일어났고, 이를 모른 채 단상에서 내려가던 김씨를 뒤쫓았다. 김씨는 몇 걸음 지나서야 이 사실을 알았다. 그리고 문 대통령의 품에 안겨 울었다. 문 대통령은 눈을 감고 조용하게 김씨를 다독였다. 다음 식순 진행을 위해 위로를 마치고 자리로 돌아가면서 김씨에게 짧은 위로의 말을 건넸다.
대통령의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 참석은 4년 만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집권 첫 해인 2008년 기념식에 참석하고 남은 임기에서 국무총리에게 기념사를 넘겼다. 박근혜 전 대통령 역시 집권 첫 해인 2013년 기념식만 참석하고 그 뒤부터 불참했다. 두 대통령이 기념식을 외면하는 사이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과 합창과 같은 엉뚱한 논란만 불거졌다.
문 대통령은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을 집권 ‘2호’로 지시한 뒤 기념식에 직접 참석해 유족을 위로하고 묘지를 참배했다. 기념사에서는 헬기사격 등 신군부 계엄군의 발포에서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을 묻겠다고 약속했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