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 묶기뿐이 아니다. “운동화 끈이 제대로 안 꿰어 졌다”거나 “아침 반찬이 맛이 없다"며 새로운 반찬을 해달라고 억지를 부리고 떼를 쓰며 학교를 가지 않으려 하는 경우도 있다. 지각하거나 결석하게 할 수 없다는 생각에 엄마는 어쩔 수 없이 아이의 요구를 들어줄 수 밖에 없었다.
P의 엄마는 욕심이 많았다. 늘 집안은 깔끔히 정돈되어 있어야 하고 P가 공부든 예체능이든 배우게 되면 그룹에서 최고가 되기를 바랐다. 규칙을 정해 철저하게 연습하게 하고 엄마가 바라는 대로 따라 주기를 강요했다. 하지만 타고난 기질이 자유분방하고 꼼꼼하지 못한 P는 엄마를 만족 시킬 수가 없었다. 수시로 야단을 맞고, 매도 맞았다.
P는 3학년이 된 이후엔 오히려 엄마에게 아침마다 짜증을 부리고 트집을 잡고 고집을 부렸다. 엄마에게 이래라 저래라 요구하면서 학교에 가지 않으려 했다. 엄마로서는 기가 막히는 일이었다. 엄마가 “공부를 안해도 좋으니 학교만 가라”고 애원을 해도 듣지를 않았다. 어려서부터 지속적으로 엄마의 지나친 통제를 받아온 P는 이제 역으로 “학교를 안간다”며 엄마를 압박했다.
P가 반듯하고 똑똑하게 자라주길 바랬던 엄마의 기대와는 반대로 아이는 자꾸 괴팍해지면서 엇나가기 시작했다. 작은 일에도 엄마에게 대들었는데 엄마는 그런 아이의 모습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엄마한테 감히'라는 생각에 감정 조절이 제대로 되지 않을 때가 많았다.
치료를 하면서 P의 엄마는 자신이 정해놓은 틀 속에 자식을 가둘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았다. 그러면서 아이에 대한 자신의 욕심을 하나씩 내려놓으니 엄마 자신과는 전혀 다른 욕구를 가진 한 인간 ‘P'가 보이기 시작했다. 워낙 성향이 다르다 보니 필연적인 갈등도 편안하게 받아들였다. 엄마가 아이를 최고로 키워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면서 P도 차츰 회복되어 갔다.
부모도 자기 자식을 알기위한 노력과 시간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내 뱃속에서 태어난 자식인데 내가 왜 모를까'라는 섣부른 판단은 잠시 접어두고 냉철하게 아이를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자녀를 파악하기도 전에 무조건 아무거나 가르치려 든다면 아이는 하기 싫은 걸 억지로 하게 된다. 그 아이 입장에서 부모는 ‘간섭하는 사람' 내지는 ‘지시하는 사람'으로 비춰질 뿐이다.
부모는 ‘관찰자' 혹은 ‘조력자'의 역할만으로도 충분하다. 아이들과 어울리면서 유독 흥미를 느끼거나 재능을 보이는 행동들에 관심을 기울이자. 때로는 조용하게 지켜보면서 아이가 한 걸음씩 관심 분야에 다가갈 수 있도록 도와주고, 그에 따라 아이의 반응까지 살피는 세심함도 필요하다.
천천히 끊임없는 관심과 애정으로 아이를 관찰하면, 아이는 자연스레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말을 해주고, 말하지 않더라도 행동으로 보여줄 것이다. 부모는 이 때를 놓치지 말고 아이의 재능을 살려주면 되는 것이다.
이호분(연세누리 정신과 원장·소아청소년 정신과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