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아내를 제가 버려야 합니까”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남긴 이 말은 오랫동안 회자됐다. 16대 대선 당시 새천년민주당 국민참여경선에서 경쟁자였던 이인제 후보는 당시 노무현 후보에게 장인의 좌익활동에 대해 질문했다. 이에 노 전 대통령은 “장인이 좌익활동했던 것을 알면서도 권양숙 여사를 사랑해서 결혼했다. 아내를 계속 사랑한다고 해서 대통령 자격이 없다면 저 대통령 후보 그만 두겠습니다”라고 답했다. 대중이 정치인 노무현이 아닌 인간 노무현에게 가장 강하게 매료된 순간이었다.
25일 개봉하는 영화 ‘노무현입니다’(감독 이창재)는 지지율 2%에 그쳤던 노무현 후보가 2002년 새천년민주당 국민경선에서 대선후보가 되는 과정을 그려낸다. 영화는 제주도에서 시작해 영·호남과 춘천, 강원, 인천을 거치면서 지지를 얻어냈던 정치인 노무현의 열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제게 맡겨주십시오. 반드시 전국을 설득해내겠습니다” “반드시 동서화합을 이루어내겠습니다” 등 정치인 노무현이 후보 시절 남긴 육성 연설 모습도 영화에 담겼다.
이창재 감독은 정치인 노무현과 함께 인간 노무현의 모습을 담는 데 집중했다. 유시민 작가, 안희정 충남지사, 이화춘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 요원, 문재인 대통령, 운전기사 노수현 씨 등 노 전 대통령의 지인들과 대화를 통해 인간 노무현의 생생한 모습을 그렸다.
이 감독은 인터뷰 과정에서 인터뷰이와 정면으로 바라보는 방식을 택했다. 스태프는 다큐멘터리에서 일반적으로 택하는 방식이 아니라고 반대했지만 이 감독은 정면 인터뷰를 고집했다. 이 감독은 지난 16일 서울 성동구 왕십리 CGV에서 열린 시사회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대화할 때 '이건 한 인간으로서 나와 당신 간의 문제'라는 식으로 접근했다”며 “인간 노무현을 보여주기 위한 도전이었다”고 말했다.
이 감독은 흔히 발하는 ‘노빠’는 아니었다. 오히려 노무현 대통령의 정책을 반대하는 편이었다. 이 감독은 시사회에서 “디젤 차를 샀는데 경유세를 올려 불만이었다. 임기 말까지 한 번도 지지한 적 없었다. 이라크 파병도 반대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 감독은 영화를 제작한 이유는 정치인 노무현보다 인간 노무현에 있었다고 전했다. 이 감독은 “정치적 공과는 역사가 매듭지어줄 것이다. 노무현은 인간이었다. 그는 자신의 인간됨을 지키기 위해서 뛰어내렸다. 정치인이기에 앞서 인간이기를 보여주려고 했던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시사회에 함께 참석했던 최낙용 프로듀서 역시 “적어도 10년 전에 세상을 바꾸려고 했던 순수한 마음을 가진 정치인이 있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면서 “영화인으로서 뭐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 감독은 19대 대선 당선 전 문재인 후보와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인터뷰를 진행하며 겪은 소회도 전했다.
이 감독은 책 ‘문재인의 운명’에서 당시 문재인 비서실장이 격무에 시달려 이빨이 10개나 빠졌다는 얘기를 보고 “참여정부 당시 격무로 힘들어서 이빨을 뺀 분 있지 않았냐”고 유도심문을 했다고 한다. 이에 문 후보는 자기 이가 빠졌다는 얘기는 하지 않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이빨을 뽑은 적이 있다고만 대답했다고 한다. 계속 추궁하자 겨우 “나도 몇 개 뽑았다”는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이 감독은 문 대통령이 자신을 감추는 모습을 보면서 “자기는 없는 사람이었다. 이 분 참 답이 없구나 하는 생각 들었다”고 전했다.
영화 ‘노무현입니다’는 지난달 열린 제18회 전주국제영화제 전주시네마프로젝트 선정작이다. 당시 전주국제영화제 최고 화제작에 오르며 호평이 이어졌다. ‘노무현입니다'는 영화사 풀과 CGV아트하우스가 배급한다. 영화는 25일 개봉한다.
구자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