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의 복심으로 통하는 양정철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은 “문재인 대통령을 잘 부탁한다”면서 공직에 참여하지 않을 것임을 선언했다.
대선 당시 캠프 비서실 부실장을 맡으며 지근거리에서 보좌해온 양 전 비서관은 16일 국민일보 등 언론에 문자메시지를 보내 “제 역할은 딱 여기까지”라면서 “그 분(문 대통령)과의 눈물나는 지난 시간을 아름다운 추억으로 간직하고 이제는 퇴장한다”고 말했다.
양 전 비서관의 2선 후퇴는 집권 초 친문 패권주의와 그 중심에 ‘3철(이호철·양정철·전해철)’이 있다는 논란을 사전에 막기 위한 행보로 보인다.
'3철' 중 맏형 격인 이호철 전 민정수석은 문 대통령의 취임식이 열렸던 지난 10일 이미 한국을 떠났다. 윤승용 전 홍보수석이 페이스북을 통해 밝힌 글에 따르면 이 전 수석은 “3철로 불리우는 우리는 범죄자가 아닙니다”면서 “곁에서 묵묵히 도왔을 뿐입니다”라고 밝혔다. 이어 “정치적 반대자들이 삼철을 공격했다”면서 “비난과 오해가 옳다거나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담담하게 받아들인다”고 덧붙였다.
부산 지역 최대 공안사건으로 1981년 일어난 부림사건에 연루된 이 전 수석의 변호를 노 전 대통령이 맡았었다. 영화 ‘변호인’으로도 잘 알려진 부림사건으로 시작된 인연으로 이 전 수석은 참여정부 민정수석까지 지냈다. 또 문 대통령과는 경남고 선후배 사이로 공식직함 없이 영남권에서 대선을 도왔다.
2012년 대선 당시에도 친문 패권논란과 3철 논란이 일어나자 캠프 핵심 친노 인사 9명이 일괄 사퇴하기도 했었다. 이번 이 전 수석의 출국과 양 전 비서관의 2선 후퇴 선언은 탕평·통합인사 중인 문재인정부의 부담을 덜어주고 있다. 최측근인 이 전 수석과 양 전 비서관도 공직을 맡지 않는 상황에서 대선에 기여한 캠프 관계자 중 누가 적극 공직에 나서겠냐는 것이다.
여기엔 문 대통령의 의중이 담긴 것으로도 보인다. 7급 공무원 출신인 이정도 총무비서관의 임명은 큰 화제를 낳았는데 당시 올라온 명단에 양 전 비서관이 있었음에도 문 대통령이 낙점(조선시대 임금이 추천된 세 후보자 중 한 사람 위에 점을 찍는 행위)을 하지 않았다. 측근 정치에 대한 결벽증에 가까운 문 대통령의 성향이 반영됐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혹은 문 대통령이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시절 겪은 안철수 의원 등의 탈당으로 친문 패권주의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겼다는 해석도 나온다.
3철 중 더불어민주당 전해철 의원(경기 안산상록갑)은 법무부 장관 하마평에 오르고 있다. 이 전 수석과 양 전 비서관이 2선 후퇴하면서 전 의원의 입각 가능성도 낮아졌다는 관측이 나온다. 다만 전 의원이 중요 상임위인 법제사법위원회 민주당 간사를 맡고 있기 때문에 입각 하지 않아도 문제인정부 국정 과제를 뒷받침하기 위한 입법전쟁에서 일정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과 3철이 교감하면서 2선 후퇴가 이루어지자 과거 박근혜정부의 ‘문고리 3인방’이 회자되고 있다.
문고리 3인방으로 지칭된 이재만 전 총무비서관, 정호성 전 부속비서관, 안봉근 전 국정홍보비서관은 집권 초부터 최순실 등 비선실세에 의한 국정농단이 드러나는 순간까지 청와대에 있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정계입문 했던 1998년 대구 달성군 재·보궐선거 때부터 함께 해온 문고리 3인방은 집권 초부터 청와대 주요 보직을 차지했다. 청와대 안살림을 맡는 총무비서관에 이재만,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는 제1부속비서관은 정호성, 제2부속비서관은 안봉근이 맡았다.
2014년 11월 한 언론을 통해 ‘정윤회 문건’이 드러나고 박 전 대통령이 의원 시절 비서실장 역할을 해온 정윤회씨가 국정에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됐을 때 문고리 3인방은 십상시로 지칭되며 위기를 맡았다.
정씨에게 국정 관련 자료를 건네고 지시를 받았다는 의혹에 휩싸였고 교체설이 대두됐지만 박 전 대통령은 정계입문 때부터 함께 해온 문고리 3인방에 대해 무한 신뢰를 보냈다. 2015년 신년기자회견에서 “의혹 받았다는 이유로 내치면 누가 내 옆에서 일할 수 있겠나”면서 “교체할 이유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곧이어 청와대 조직 개편이 일부 있었지만 문고리 3인방은 그대로였다. 이 전 비서관은 총무비서관직을 유지했고 정 전 비서관은 2부속실이 1부속실에 통합된 부속실을 이끌었다. 안 전 비서관만 국정홍보비서관으로 이동했을 뿐이었다.
이후 ‘최순실 게이트’가 드러나기 시작한 지난해 10월 문고리 3인방은 청와대를 떠난다. 이 전 비서관과 안 전 비서관도 국정농단을 방조했다는 의혹을 받았고 정 전 비서관은 구속기소 돼 재판을 받는 중이다. ‘박영수 특검’ 조사에 따르면 정 전 비서관은 최순실과 박 전 대통령 사이의 연결고리로서 최씨에게 각종 대외비 문서를 건네는 등 국정농단 부역자로 드러났다.
대선 승리 이후 박수칠 때 떠나면서 문 대통령과 멀어진 삼철의 행보는 박 전 대통령 가장 가까이에 남았던 문고리 3인방과는 극명하게 대비되는 것은 분명하다.
이상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