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일본을 ‘성(性)진국’이라 부른다. ‘성적으로 개방된 나라’란 의미도 담겨 있긴 하지만 ‘성산업이 발전한 나라’라는 조소의 성격이 훨씬 강하다. 일본 포르노산업은 연간 매출이 5000억엔(약 4조9445억원)에 이르는 거대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매년 2만장씩 포르노 타이틀이 출시돼 DVD숍 등에 깔린다.
이런 일본에서 최근 연예인으로 활동하게 해주겠다며 여성들을 속여 포르노 영상 출연을 강요한 사례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성산업에 비교적 '관대했던' 일본 당국도 포르노 업계의 어두운 진실을 더 이상 외면할 수 없게 됐다.
영국 가디언은 15일 이 같은 일본 포르노 업계의 실태를 집중 조명했다. 업계 관계자들이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여성들에게 “연예인으로 성공하기에 적합한 외모와 카리스마를 가졌다”며 접근하는 수법, 실제 촬영할 영상이 성인물이란 사실은 아주 모호하게 처리된 '계약서' 등을 소개했다. 이런 수법에 당한 피해자 인터뷰도 함께 실었다.
포르노 출연을 강요당한 쿠루민 아로마(26·여)씨는 인터뷰에서 “처음에는 모델로 발탁됐는데, 나중에 옷을 벗어야 한다는 조건의 계약서를 따로 제시받았다”고 밝혔다. 계약을 맺은 뒤 영상 촬영을 거절할 경우 프로듀서가 수백만엔의 벌금을 물리거나 그들의 부모, 친구, 옛 직장동료 등에게 포르노 촬영 사실을 알리겠다며 협박하기도 한다고 했다.
지난해 일본 정부는 포르노 업계에서 취약계층 여성을 모집해 성인물 촬영을 강요하는지 파악하려고 사상 처음 실태조사를 벌였다. 조사 대상 2만여명 중 200명이 그런 접근을 받아 계약서에 서명했다고 밝혔고, 50명 이상은 카메라 앞에서 누드 포즈나 성관계를 하도록 강요받았다고 응답했다.
인신매매 피해자를 지원하는 시민단체 ‘라이트하우스’와 ‘포르노와 성폭력에 대항하는 사람들’에는 지난해 1월부터 11월까지 여성 148명이 포르노 촬영 강요 피해를 입었다며 도움을 청해 왔다. 214년 29건, 2015년 83건에 비해 극적으로 증가한 수치다.
인권 시민단체 ‘휴먼라이츠나우’(Human Rights Now)의 변호사이자 사무총장인 이토 카즈코는 “정말 놀라운 일은 포르노 제작사가 제재 없이 이런 불법 행위를 할 수 있다는 점”이라며 “포르노 영화 출연 강요를 규제할 법률도, 정부 감독도 없다"고 지적했다.
이형민 수습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