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려장(靑藜杖) 전문가’ 최병남(78세·광석중앙감리교회) 원로목사를 만난 곳은 충남 논산 광석면 광석로에 있는 그의 작업실에서였다. 환한 웃음을 지으며 “어서 와유~”라고 인사하는 최 목사에게서 넉넉한 마음씨가 느껴졌다.
최 목사는 1998년부터 4만9600여개의 청려장을 만들어 지팡이가 필요한 어르신들에게 무료로 나눠주고 있다. 누가 시킨 일도 아니었고 사비를 들여 해온 일이었다. 젊을 때부터 어르신을 공경해 온 최 목사의 소신이 이런 일을 하게 된 동력이었다.
청려장은 어르신들 사이에선 ‘명품 지팡이’로 통한다. 사료에는 통일신라시대 때부터 장수한 노인들에게 왕이 하사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 전통은 지금도 이어져 매년 어버이날마다 대통령이 100세가 된 어르신들에게 청려장을 선물하고 있다. ‘대통령의 지팡이’라는 별명이 붙은 것도 이 때문이다. 가벼우면서도 단단하기 때문에 청려장은 실용성면에서도 으뜸이다. 허리가 굽은 어르신들의 보행을 돕는 최고의 도우미인 셈이다.
명품 지팡이와 목회자와의 만남이 언뜻 이해되지 않았다. 어떤 사연이 있었을까. 천성이 부지런하고 손재주가 좋았던 최 목사는 41년 동안 광석중앙감리교회에서 목회 하면서도 늘 일거리를 찾아다녔다. 그가 청려장을 만들기 시작한 건 순전히 호기심 때문이었다. “어느 날 보니 동네 어르신들이 다 지팡이를 사용하시더라구요. 그런데 의외로 많은 분들이 우산이나 부러진 나뭇가지를 대충 손질해 지팡이 대용으로 쓰셨어요. 그게 그렇게 안쓰럽더라고요~”
시작하면 반드시 끝을 보고 마는 최 목사는 청려장 제작법을 연구하기 위해 팔을 걷어 붙였다.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시제품이 나오기 시작했다. ‘청려장의 역사’를 설명하던 최 목사가 대뜸 “이 지팡이 뭘로 만드는지 알아유?”라고 물었다. 기자가 머뭇거리자 작업실 구석에 아무렇게나 쌓여있던 풀을 가리켰다. 들판에서 봤던 기억이 분명 있었다. 갈대보다는 두꺼워도 바람의 움직임에 몸을 맡기고 위태롭게 서있단 풀, 바로 명아주였다.
한겨울에는 손끝만 스쳐도 바스러질 정도로 약한 명아주가 청려장으로 ‘둔갑’하는 공정은 매우 복잡했다. 명아주를 구하는 것부터 쉬운 일이 아니었다. 대량으로 명아주를 구하기 위해서는 전국의 들판을 샅샅이 뒤지는 수밖에 없다. 10월초 명아주를 구하고 나면 흙을 털고 잔뿌리를 태운 뒤 톱으로 다듬는 게 첫번째 작업이다. 이후에는 끓는 물에 삶은 뒤 말려야 한다. 여기까지 마치면 보통 12월이 된다. 잘 마른 명아주에 색을 입히는 건 이듬해 봄부터 하는데 이 작업이 공정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옻칠을 하는 게 정석이지만 가격이 비싸 합성도료인 ‘카슈칠’을 한다. 칠은 아홉 차례 반복한다. 역한 냄새를 풍기는 카슈칠을 하고 말린 뒤 사포로 손질하고 다시 칠하는 일을 반복해야 드디어 제대로 된 청려장이 만들어진다.
명아주를 구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모든 작업이 최 목사의 몫이다. 하지만 2010년 최 목사가 망막박리로 실명위기에 놓인 일이 있었다. 카슈가 문제였다. 이토록 위험하다보니 가족들이 청려장 만드는 걸 반대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최 목사는 5만개를 채운다는 입장이다. 400개만 더 만들면 목표를 달성한다.
물론 생산량이 예전 같지 않아 노인정이나 교회 등으로 대량 발송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본래의 취지대로 청려장이 필요한 어르신들에게는 정성스럽게 포장해 선물하고 있다.
인터뷰가 끝날 때쯤 최 목사의 시선이 장대비가 내리는 창밖으로 향했다. 그리고는 “비가 그치고 나면 명아주가 한 뼘은 더 자랄텐데”라는 말을 덧붙였다. 이 독백이 명아주만 더 구할 수 있다면 청려장 4000개는 더 만들 수 있겠다는 의미로 들린 건 기자만의 착각이었을까.
글·사진=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