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은경, 되찾은 연기 초심… “천천히, 즐기면서” [인터뷰]

입력 2017-05-14 08:30
쇼박스 제공

무려 15년째 연기를 하고 있다. 알 만큼 알고 해볼 만큼 해봤다는 얘기다. 배우 심은경(23)은 그러나 만족하는 법이 없다. 매번 부족함이 먼저 보인단다. 20대 여배우 가운데 영화 원톱 주연을 맡아 성공시킬 수 있는 힘을 지닌 거의 유일한 배우임에도 그렇다.

한동안 슬럼프를 겪기도 했다. 이른 성공이 부담으로 다가온 탓이다. ‘써니’(2011·누적 관객수 736만명) ‘수상한 그녀’(2014·865만명) 흥행 이후 스스로의 강박은 커졌다. 매 작품마다 좀 더 나아진, 새로운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이 그를 괴롭혔다.

그럴수록 더 연기에 매달렸다. 지난해 ‘널 기다리며’ ‘부산행’ ‘걷기왕’과 목소리 출연한 ‘로봇, 소리’ ‘서울역’까지 다섯 편을 선보이게 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직접 부딪히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는 마음으로 앞만 보고 달렸다. 그런 심은경에게 쉼표를 찍어준 작품이 ‘특별시민’(감독 박인제)이었다.

“연기를 잘하고 싶은 욕심도 고민도 많았어요. ‘내가 계속 연기를 해도 괜찮은가’ 싶을 정도로 회의를 느낄 때도 있었고요. 그런데, 그것도 하나의 과정이었더라고요. ‘특별시민’은 그런 고민을 접어두고 오직 연기에만 매달릴 수 있었던 작품이에요. 큰 도움이 된 거 같아요. 되게 마음이 편해요 지금은.”


최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심은경은 자못 밝고 편안해보였다. 연신 예쁜 미소로 답하는 그에게선 여유로움이 묻어났다. “제일 중요한 건 내가 즐기는 거라는 걸 알았어요. 그동안 최고가 되는 것에 얽매여있었다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그건 사실 아무것도 아닌데…. ‘특별시민’을 계기로 내 자신을 내려놓을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특별시민’은 치열한 선거전의 뒷이야기를 그린 영화. 극 중 심은경은 정치 초년생 박경 역을 맡았다. 광고 전문가로 일하다 3선 서울시장에 도전하는 변종구(최민식) 캠프에 합류한 인물. 비린내 나는 정치판에 적응하지 못하고 표류하는 박경을 심은경은 “정치 미생”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박경은 본인이 생각했던 정치판의 모습과 거대한 음모가 난무하는 현실 속에서 괴리감을 느꼈을 것”이라며 “어떻게 하면 그런 감정선을 잘 표현할 수 있을까 많은 고민을 했다. 박경의 감정을 최대한 전달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털어놨다.

“시나리오를 처음 받았을 때는 ‘우와, 나에게도 이런 작품이! 만세!’ 좋아했는데 한편으로는 ‘과연 내가 해도 되는 걸까’란 불안감이 들었어요. 그런데 감독님께서 ‘완벽한 모습을 바라는 게 아니라 박경이 가지고 있는 신념과 꿈, 그런 미숙함에서 오는 신선함을 끄집어내고 싶다’고 말씀해주셨죠. 그런 믿음에서 용기를 냈어요.”

영화 '특별시민'의 한 장면.

사실상 첫 성인 연기 도전이었다. 최민식 곽도원 라미란 문소리 등 쟁쟁한 선배들 틈바구니에서도 심은경은 밀리지 않고 훌륭히 제 역할을 해냈다. 작품의 뭉클한 메시지를 전하는 것 역시 그의 몫이었다. 여러 칭찬의 말들이 쏟아지지만, 심은경은 멋쩍어할 뿐이었다. “나 혼자 한 건 없다” “모든 건 선배들과 감독·스태프 덕분”이라는 말을 하고 또 했다.

“저는 아직 완성된 배우가 아니에요. 앞으로 더 쌓아 가야할 부분이 많죠. 이번 작품에서는 선배님들께서 많이 도와주셨어요. 최민식 곽도원 선배님이 항상 지켜봐주셨죠. 연기라는 게 뭔지 깨닫게 된 순간들이었어요. 그래서 연기가 대하는 태도가 이전과 달라진 거 같아요. 다음 작품을 준비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평소 존경해마지않은 최민식과의 호흡은 특히나 감격스러운 경험이었다. 처음에는 너무 떨려 말도 제대로 못 붙였다. 하지만 ‘긴장하지 말고 편안하게 연기하라’는 최민식의 조언에 점차 힘을 얻었다. “너무나 큰 행운이었죠. 뵐 때마다 경외심을 느껴요. ‘평생 연기해도 민식 선배님처럼 할 수 있을까’ 싶어요. 누구도 따라가지 못할 열정을 갖고 계신 것 같아요.”

최민식에게 들은 조언은 가슴 깊숙이 새겨져있다. 여전히 줄줄 읊을 수 있을 정도로. ‘현장에 올 때 배우는 프로가 돼있어야 한다. 아마추어가 아니다. 평소에 어떻게 생활하든 촬영장에서는 개인적인 감정을 끌어들여선 안 된다. 역할에만 집중해라. 그게 프로고, 연기다.’


심은경은 “선배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많은 반성을 했다. 그동안 내가 연기를 하면서 간과했던 부분들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고 얘기했다. 현장에서도 느낀 바가 컸다. 그는 “선배님은 매 장면 감정의 타당성에 대해 생각하신다. 단 한 번도 집중력이 흐트러진 모습을 보인 적이 없으셨다”며 “배우로서도 인간적으로도 내가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되어야하는지 많이 느끼고 배웠다”고 했다.

“선배들과 함께하는 만큼 더 잘해야겠다는 부담감이 컸어요. 원톱이었던 작품들보다 더 그랬죠. 그런데 선배님들이 많이 이끌어주셨어요. 정말 다른 생각하지 않고, 연기 하나만 신경쓸 수 있었어요. ‘초심’에 대해 제대로 생각해본 순간이 아니었나 싶어요. 이 마음을 잃고 싶지 않아요. 앞으로 연기를 더 즐기면서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부지런히 또 다음 걸음을 내딛는다. 차기작 ‘염력’(감독 연상호) 촬영에 한창이다. 일본 진출도 본격화했다. 일본 매니지먼트사 유마니테와 전속계약을 체결하고 향후 활동 계획을 논의 중이다. 심은경은 “저의 가능성을 봐주신 것에 감사하다. 좋은 기회가 찾아왔고, 이제 내게 달린 것 같다. 조급한 마음을 버리고 천천히 즐기면서 재미있게 하고 싶다”고 말했다.

“부담감이 많이 줄었어요. 작품을 통해 제 진심을 전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해요. 제 자신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볼 수 있는 시각이 생긴 거 같아요. 부족함을 자책하기보다 쌓아갈 게 많다고 생각하기로 했어요. 편해진 것 같아요. 천천히 밟아가고 배워가야겠다고 생각하니까(웃음).”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