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분의 아이들 세상] 아스퍼거 장애

입력 2017-05-12 13:27
K는 초등학교 5학년 남자 아이다. 어려서부터 자기 나이에 맞지 않게 어른처럼 조숙한 행동 한다고 했다. 지적인 관심이 많아 어른들과는 대화도 잘 통하고 아는 것도 많고 기억력이 좋았다. 

특히 역사 전쟁사에 관해 모르는 것이 없었다. 역사적 사건의 연도부터 세부적인 인물의 이름까지 모르는 것이 없이 줄줄 꾀고 있다. 책을 읽는 것도 좋아하고 공부도 열심히  해 성적도 극상위권이다. 선생님도 칭찬을 많이 해주시고 주변의 어른들은 K의 부모를 몹시 부러워 했다.

하지만 K의 부모는 남모를 고민이 있다. K는 친구를 사귀지 못했다. 친구들 사이에서 말썽을 피우거나 다투지는 않지만 친한 친구가 없다. 친구들이 좋아하는 놀이에는 관심이 없고 쉬는 시간에도 열심히 책만 읽는다. 엄마가 친구들과 놀라고 하면 조금씩 친구와의 관계를 시도해 보다가 별 흥미를 못 느끼는지 금방 시들해진다. "아이들이 유치해서 재미가 없다"는 반응이었다. 

하지만 엄마가 관찰해 보면 K가 아이들과의 대화를 이어가질 못하고 일방적으로 하고 싶은 말만을 할 때가 많았다. 친구들이 별 관심없어 하는 역사 이야기, 시사 이야기만 하니 친구들은 똑똑해 보이는 K와 친해지고 싶어 다가왔다가도 금방 시큰둥하며 멀어졌다. 엄마가 친구를 억지로 붙여 주어도 둘 뿐일 땐 그런대로 놀다가도 세 명만 되면 친구들과 동떨어져 혼자 놀게 된다며 병원을 찾았다.

P도 초등학교 3학년 남자 아이다. P 역시 머리가 좋고 기억력이 특히 비상한 아이다. P는 특히 곤충에 대해서 매우 해박하다. 곤충학 박사와 이야기를 나누어도 부족하지 않을 지식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P는 수업에 방해가 된다고 선생님들이 매우 힘들어 하신다. 말도 많고 산만하기도 하지만 수업 중에 곤충에 대한 얘기만 나오면 흥분해서 계속 나서서 이야기를 한다. 처음엔 선생도 아이의 지식에 놀라 잘 들어 주셨지만 아이의 말이 끊이지 않고 이어지니 힘들어했다. 

하지만 P는 이를 눈치채지 못하고 이야기를 멈추지 않아 결국 혼나게 된다. 차츰 아이들도 P를 싫어하고 친구가 주변에 없었다. 따돌림 받고 선생님에게 자주 야단 맞는 P를 3학년 때 부터는 아이들이 놀리고 괴롭히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아이는 공격적이고 폭력적으로 변해 갔다. 혹시 ADHD(주의력 결핍 과잉행동 장애)아니냐며 병원을 찾게 됐다.

두 아이는 모두 아스퍼거 장애(자폐 스펙트럼 장애)로 진단됐다. 보여지는 양상은 조금 다를 수 있으나 둘 다 '사회적인 판단력'이 부족하고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고 공감하는 능력이 떨어지고 친구를 사귀지 못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K의 부모처럼 아이의 친구관계를 관심있게 관찰하거나 P처럼 충동적,공격적인 행동이 나타나는 경우 그래도 문제를 조기에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지적인 관심이 남다른 경우가 많고 학습능력이 탁월한 경우도 많다. 공부를 잘하면 모든 것이 용서되는 우리 나라와 같은 특이한 환경에선 조기 발견이 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초등학교, 중학교에선 특목고 준비하느라 새벽 1~2시까지 학원에만 있느라 사회성이 떨어지는 줄도 몰랐고 친구가 없는 줄도 몰랐어요" "공부 열심히 하니 그 걸로 다된 줄 알았죠"

뒤늦게 '대형 사고'를 치고 병원을 찾게 되는 부모님들이 흔히 하시는 말이다. 참으로 안타깝다.

이호분(연세누리 정신과 원장, 소아청소년 정신과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