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이정도처럼."
11일 기획재정부 공무원들이 모인 자리에선 어김 없이 누군가 이 말을 꺼냈다. 단 두 마디 짧은 구절은 마치 오랜 '격언'처럼 기재부 인사들의 뇌리에 박힌 듯하다. 청와대 총무비서관에 전격 발탁된 기재부 출신 이정도 비서관을 두고 하는 소리였다. '종합고'를 나왔고, 행정고시가 아닌 7급으로 공직에 발을 들인 '흙수저'급 공무원의 스토리가 공직사회에 울림을 준 듯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기획재정부 행정안전예산심의관을 지낸 이정도 비서관에게 청와대 '총무'를 맡겼다. 총무비서관은 청와대 인사와 재정을 총괄한다. 청와대 직원 임면을 책임지고 예산을 집행하며 대통령 보좌조직의 살림살이 꾸려가는 '실세' 자리다. 과거 대통령들은 이 자리에 '가장 믿는 사람'을 앉혔다. 정치를 하면서 늘 지근거리에 뒀던 '최측근' 인사를 총무비서관에 발탁하곤 했다.
이명박 대통령 시절엔 김백준씨가 총무비서관이었다. 이 대통령과 고려대 동문이며 오랫동안 'MB의 집사'로 불렸던 인사였다.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하며 총무비서관을 맡아 퇴임 때 이 대통령과 함께 청와대를 떠났다. 5년간 청와대에서 누구도 그의 일을 대신하지 못했다. '총무'는 늘 김백준씨였고, 정권 후반에 '총무기획관'으로 직급을 한 단계 높여 같은 일을 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정부 출범과 함께 '문고리 3인방' 중 한 명인 이재만씨를 총무비서관에 기용했다. 그는 정호성 안봉근 전 비서관과 함께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국회에 진출할 때부터 보좌해온 인물이다. 역시 이명박 전 대통령처럼 '가장 믿는 사람'을 총무비서관에 앉힌 것이다.
반면 문재인 대통령은 정통 '경제공무원'을 총무비서관으로 발탁했다. 이정도 비서관은 '측근' '집사' '문고리' 등의 용어와 거리가 먼 기획재정부 공무원 출신이다. 1965년생이며 경남 합천 출신이고 창원대 행정학과를 졸업했다. 재정을 담당하는 자리에 맞게 재무 전문가를 앉힌 것 외에는 다른 '인연'을 찾아보기 어렵다.
'최측근'이 맡던 자리에 '공무원'을 앉힌 것은 '그간의 관행을 끊겠다' '투명한 청와대를 꾸려가겠다' '시스템에 따라 운용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은 청와대 춘추관에서 수석비서관 인선을 조국 민정, 조현옥 인사, 윤영찬 홍보수석 순으로 발표했다. 이어 '총무비서관'을 소개하는 순서가 되자 그는 "오늘 특히 눈여겨봐주셨으면 한다"면서 이정도 비서관을 발표했다.
임 실장은 "청와대 인사와 재정을 총괄하는 막강한 총무비서관 자리는 대통령 최측근들이 맡아 온 것이 전례였지만, 문 대통령은 이를 예산정책 전문 행정공무원에게 맡겨 철저히 시스템과 원칙에 따라 운용키로 했다"고 설명했다.
이정도 총무비서관은 기획재정부 25년간 근무 시절 내내 '꼼꼼' '성실' '겸손'이란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행정고시 출신 관료들의 치열한 각축장인 기재부에서 비고시 7급 출신이란 '약점'을 극복하고 승승장구했다.
이 비서관은 1992년 임용된 뒤 줄곧 예산실 업무를 봤다. 예산과에서 실무 관리를 담당하는 ‘총괄주사’로 꼼꼼함을 인정받았다. 2002년 사무관 승진 뒤로는 장·차관 보좌진으로 실력을 인정받았다. 2003년 변양균 당시 기획예산처 차관 시절 차관 비서를 맡았고, 변 차관이 장관으로 승진한 뒤에도 변 장관을 보좌했다. 이 때문에 '변양균의 사람'으로 보는 시선도 있었다.
변 장관이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에 입성할 때 이 비서관을 데려갈 정도로 신망이 두터웠다. 강만수 재정경제부 장관 비서관으로도 일했다. 공교롭게도 세 명 모두 경남 합천 출신이다.
이 비서관은 기재부 인사과장 시절 하급자가 사무실을 찾아도 상석을 양보하고 손수 음료수병을 따줄 정도로 겸손했다고 한다. 기재부 관계자는 “섬김과 자신을 낮추는 것이 몸에 밴 분”이라고 말했다. 또 매일 오전 6시 출근해 밤 11시에 퇴근할 정도로 워커홀릭이면서도 짬짬이 운동을 거르지 않을 정도로 성실했다.
지난해 2월 고위공무원단인 기재부 복권위원회 사무처장을 끝으로 기재부를 떠날 때 예산실 내에서는 ‘잊혀진 사람’으로 인식됐다. 그러나 같은 해 10월 예산실 국장으로 복귀하면서 모두를 놀라게 했다. 이날 총무비서관으로 또 한번 기재부를 놀라게 하면서 기재부 내에서는 ‘인생은 이정도처럼’이라는 말이 회자됐다.
태원준 기자 wjt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