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개 극단이 참여하고 있는 20, 30대 공동체 연극그룹 ‘화학작용3’은 5월4일부터 극단 불의전차 <아무도 없는 이 밤, 연출 변영진>, 극단 신야< 코발트블루, 연출 신아리>를 시작으로 릴레이로 이어가고 있다.
공동 연극축제 ‘화학작용3’ 는 미아리 예술극장을 공동체 연극의 실험적인 무대로 만들자고 모였다. 협동·공동체 연극으로 공공극장의 기능으로 활성화 시키자는 취지다. 젊은 연극인들이 ‘극장 협동조합’으로 간판을 달고 공동 기획해 청춘의 날것들로 연극을 무장하고 있는 일명, ‘미아리고개 협동연극’ 축제다. 공동체 극단들은 대학로 중심의 연극축제를 벗어나 싱싱하고 날렵한 언어로 연극실험의 풍향계를 미아리 고개로 돌리고 있다.
무대는 간소하다. 최소한의 오브제로 극을 구성하고, 배우들 열기는 무대 수면으로 살아 숨 쉬는 활어로 꿈틀된다. 이번 릴레이 연극의 특징을 들고 대학로라는 연극 거점 지역 ‘링’ 밖에서 공동체 연극언어의 ‘판’ 을 들고 전진하는 속도는 상쾌하다.
참여극단들의 고유한 연극 언어로 말을 걸고 장면으로 딴죽을 거는 각 극단들의 소리로 배우들 태도는 조미료를 넣지 않고 담백한 맛으로 연극식감을 만든다.
날것의 시선으로 투영된 현실의 그림자를 거침없는 태도와 눈으로 시대 풍경들을 고뇌하며 견인하고 있다. 쓰라린 아픔, 삶, 걷고 뛰는 인생, 사랑, 취업, 사회적 약자, 소외, 사회질서, 자본주의, 국가 권력 등으로 구성된 소재들은 88만원 세대를 거쳐 헬 조선 언덕에서 바라보는 현실 풍경을 솔직하고 거침없는 속살들을 들어내며 20, 30대 들이 공감하고 아파하는 얘기들이 공동체 연극의 싱싱한 시선과 언어로 무대를 채운다.
이들 시선으로 반사되는 현실풍경은 카메라로 저장되거나 기억의 틈으로 담아낼 수 없는 도려내고 치유해야 할 것들이다. 공동체 연극이 현실로 던지는 언어의 두께는 견고하다. 시선을 압도하는 무대나 색감 있는 의상은 오히려 사치다. 걸치지 않아도 빈공간의 무대는 청춘의 연극열기로 전류를 보낸다. 극장 전체 150석을 꽉 채운 관객들은 공동체 연극이 흘려보내는 전류에 공감을 보낸다.
‘아무도 없는 이 밤에’ 보이는 ‘코발트블루’ 의 희망
‘아무도 없는 이 밤에’ , ‘코발트블루를 볼 수 있을까?’ 두 작품은 다르지만 청춘들이 살아가며 부딪치는 거대한 현실의 벽과 소외, 약자들의 상처를 마주한다. 고름을 짜내며 이들이 살아가는 현실 구경(求景)을 떠난다.
‘아무도 없는 이 밤에’는 변영진이 연출을 하고 작품을 썼다. ‘코발트블루’는 공동 창작으로 구성했고 신아리가 연출을 했다. ‘코발트블루’는 선명함으로 비쳐지는 현실이다. 살아갈 만한 투명한 세상이다. 극은 이들이 느끼고 바라 볼 수 있는 색을 찾아 떠나는 언어놀이로 현실을 담아낸다. 타자와 마주하는 삶과 현실 풍경들을 연상단어로 연결하고 연속된 동음이어로 장면을 전환하면서 이야기를 형성한다.
동음이어의 생산성은 삶과 현실풍경의 다의어로 치환되고 극중 장면은 ‘고달픈’, ‘선명한’, ‘기억’, ‘지움’ 네 사람의 극중 인물들이 유쾌한 놀이로 극의 균형을 잡는다.
단어 연결로 이어지는 장면 전개 타이밍이 뛰어나다. 언어 놀이극으로 바라보는 현실은 타인과 관계를 형성하지 못하는 온기 없는 사회다. 개별적 색(色) 과 타자의 색(色)이 섞여 온기가 느껴지는 색은 현실 벽면으로 비켜 있다.
정치권력, 경제권력, 자본권력 등은 사회적 약자들의 소외감을 보듬지 못하는 고장 난 자본주의 현상이다. 돈, 힘, 권력만이 타자와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
놀이에서 다홍, 어두운 회색, 파랑이로 분한 극중인물로 상징되는 현실은 전세금, 고지서와 독촉장, 빛, 학자금, 이자, 대출, 흙수저, 금수저, 연체, 무일푼 등으로 둘러싸여 있다. 코발트블루의 색을 찾아 떠나는 극단 신야는 현실의 다양한 풍경들을 속도감 있는 놀이로 풀어내고 있다.
마지막 암전상태에서 서핑보드와 오리발을 들고 바캉스를 떠나는 차림으로 서 있는 고달픈, 선명, 기억, 지움의 장면형상화는 희망이 숨을 쉬고 공존하는 코발트블루의 세계를 간접적으로 들어내고 있다. 그러나 속도감 있는 언어 놀이극으로 전진하다 결말을 이미지로만 극을 끝낸 것은 친구들과 재밌게 놀다가 느닷없이 집에 간다는 식이다. 놀이극으로 극을 이끌고 장면을 현실감 있게 투영시키려는 의도와 아이디어는 돋보였고, 배우들이 무대에서 뛰는 활력은 50분 동안 극을 몰입하게 한다.
‘아무도 없는 이 밤’ 에는 죽도록 혼자 달린다.
‘아무도 없는 이 밤에’ 극중 인물(기차, 예지, 이선, 대철)의 삶은 고단하고 남루한 인생이다. 유기차의 누나(이선, 조옥형 분)는 시각장애인이다. 무대는 간소하다. 무대 뒷면으로 장면전환을 이룰 수 있도록 간소화된 나무 판이 세워져 있는 것이 무대의 전부다. 그 옆으로는 기차(유희재 분)가 한 여인(김진영 분)을 의자에 묶어 놓고 있다. ‘아무도 없는 이 밤에’ 는 주인공 유기차가 누나(시작장애인) 죽음을 가해 여인과의 대화를 통해 걷고, 뛰며 지나온 골목들이 파편화된 장면으로 전개된다.
극은 누나 죽음, 유기차와 대철, 부적응 학교생활, 예지 임신, 장사, 군대이야기, 종교와 구원, 기독교 봉사프로그램 등을 교차시키며 대철, 예지, 누나와 달려온 남루한 인생의 길목들을 들추어낸다. 이들 삶과 인생은 소외 된 삶이고 과거와 달라질 수 없는 죽도로 달려야만 하는 길목이다.
배인숙의 ‘누구라도 그러하듯이’를 도입 노랫말로 설정 한 것은 누나와 함께한 삶의 기억으로 들어가는 회상의 교차로이며, 극중 인물 기차가 품고 있는 내면으로 동일화 된다.
유기차는 남루한 삶의 길목에서도 친구들한테는 ‘의리’를 들어내고 누나한테는 가족애의 온기를 품는다. 초등학교시절부터 입에 욕을 달고 살아서 ‘시발대철’로 불리는 대철, 남성화 된 인물로 그려지는 예지는 성소수자인 동성애자다.
‘아무도 없는 이 밤에’의 인물들이 안고 있는 것은 삶의 부적응과 제도권 이탈, 그리고 여전히 소외 된 인생들이다. 희망의 빛으로 구원해 줄 수 있는 것은 스스로 지키는 것뿐이다. 가족, 부모, 공교육, 국가제도 등 사회적 시선의 모성애 온기는 피어나지 못한다.
연출은 성소수자들의 삶을 예지를 중심으로 밀어 넣고, 국가의 보육문제, 공교육 현실성, 군대구타, 일부 기독봉사단체의 이중성을 겹치면서 연출은 냉소적인 시선을 보낸다. 막다른 골목의 절망은 시각장애인인 누나의 죽음과 대철이의 자살(죽음)이다. 연출은 이들의 삶과 인생의 골목을 냉소적인 시선으로 장면을 포개 놓는다. 철저하게 혼자서만 달려야 하는 삶이고 현실이다. 정부복지제도는 빈곤하고, 교육은 다름의 가치와 개성을 존중 받지 못하는 획일화된 교육과 제도다.
교인으로 분한 현석(전도사, 장기석 분)과 여인은 기차누나에게 성경공부를 통한 희망과 삶의 구원을 요구하지만 되돌아오는 것은 사회적 약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사기극이 판치는 세상이다. 희망을 품을 수 없는 누나는 죽음을 선택 할 수밖에 없다. 달려가도 버틸 수 없는 현실에 대철은 자살로 극단적인 죽음을 선택한다.
이들의 삶과 인생은 오로지 치열하게 각개전투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삶이다. 보이지 않는 희망 사다리로 올라서기 위해서는 홀로 달리고 뛰어서 희망의 전기를 자가발전으로 끌어 올려야 하는 현실한복판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변부 삶을 모성애적 온기로 희망의 다리를 연결하는 것은 ‘터미네이털’ 별명이 붙은 담임선생님(정명군 분)이다. 연출은 이 극중 인물을 구타선생님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강하지만 남루한 인생의 골목을 돌아서면, 교차로에 희망으로 서있는 인물이다. 그러나 극이 끝나도 연출은 ‘죽도록 혼자 달리는’ 유기차 이미지를 교차시킨다. 살아가는 현실 한복판은 철저하게 소외되고 변방으로 밀려난 채 죽도록 혼자 달리는 현실의 밤은 깨어 있지 않은 ‘아무도 없는 이 밤’이다.
이번 작품은 대철과 선생님의 희극적인 이고 유쾌한 연기로 극의 무거움을 희극적으로 균형을 이루고 있고, 유기차 역은 1인칭 시점으로 누나와 친구들과 달려온 인생을 에피소드화 시키면서 이야기를 끌고 가고 있다. 이번작품에서 대철과 담임선생을 중심으로 한 희극성은 극의 무거움을 잡아내는 리듬을 형성하고 있다.
연출의 탁월한 재능이다. 그러나 웃음으로 밀어 넣은 다섯 가지의 에피소드( 예지의 임신, 누나와 대출의 죽음, 학교생활, 군대이야기, 봉사단체)가 교차하면서 전개되는 서술방식의 에피소드들이 웃음으로 전소되어 이야기의 큰 흐름이 방향감각을 잃었다. 극적 구성의 핵으로 모이질 못해 아쉽다.
또한 의자에 묶인 채로 줄 곧 앉아 있으면서 장면에 개입하는 역할(여인) 과 공간의 배치는 부담스러울 수 있다. 재공연의 기회가 된다면, 극의 중심이 비켜가지 않는 확장된 서사로 연결될 수 있도록 이음새를 다시 연결해 보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그러나 극단 ‘불의 전차’를 이끌고 있는 변영진 연출의 장점은 장면에 웃음의 감각을 균형 있게 유지한다는 점, 그것을 장면으로 형상화 시켜 극적 구성을 유연하게 연결하고 있는 점, 특정한 장면을 날카롭게 도려 낼 수 있는 것은 연출로 탁월한 감각이라 할 수 있다. 불의전차 배우들의 열기와 연출 감각은 더욱 두께가 탄탄한 연극으로 이어질 것으로 기대한다.
화학작용 3 <미아리고개 예술극장 편>는 6월25일까지 달린다.
5월25일 부터 28일까지 5월 마지막 작품으로 공연되는 <치치코프, 앤도시의 이상한 소동·5월25일 부터 28일까지> 작품은 극단 ‘공연연구소 탐구생활’과 극단 ‘호호바다’ 두 극단이 공동으로 참여해 7개 작품을 공연한다. 작품별로 1시간 이내로 공연되는 연극축제는 2시간 이내에 두 개 작품을 연달아 볼 수 있다.
두 개 극단이 한 팀을 이뤄 두 개 작품이 1시간 이내의 공연으로 10분정도 휴식을 거친 뒤 교차적으로 공연한다. 6월1일부터는 극단 <이언시스튜디오> ‘우리사이는 불과 같이 불편하고’, 극단 <연미> ‘무수한 날들은 하나의 밤과 같다’를 시작으로 25일까지 <극단 파수꾼>, <사다리 움직임 연구소> 등 8개 극단 8개 작품을 올리면서 15개 연극을 품고 6월25일까지 미아리고개를 달려간다. 민·관이 손을 잡고 ‘지역형 시민극장(Community Theater)’을 목표로 2015년부터 성북문화재단과 지역주체 ‘마을담은 극장 협동조합’이 공동기획 하고 있는 축제다.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연극/공연예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