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전 개봉한 모 영화처럼 진짜 부정투표가 있을 지도 모르잖아요? 개표과정을 한 번 직접 지켜보고 싶었어요.”
9일 오후 8시30분. 직장인 이경란(34·여)씨는 15명의 경쟁자를 제치고 개표 참관인으로 뽑혀 서울 양천구 양정고등학교 개표소를 찾았다. 들뜬 표정으로 현장을 지켜보는 이씨는 눈빛만큼은 날카로웠다.
19대 대통령 선거 투표는 9일 오후 8시 끝났지만 개표소는 이때부터 분주해진다. 국민들의 손을 거친 표를 하나하나 개표하는 전국 251개 개표소에서는 개표사무원, 시민참관인들이 긴장한 분위기에서 바삐 움직였다.
서울 송파구 SK핸드볼경기장 1층에 설치된 개표소에는 400여명의 개표사무원들이 참여했다. 이들은 투표함이 들어오기 전부터 긴장한 모습이었다. 오후 8시30분쯤 투표함이 들어오자 투표 용지를 펴고, 분류하는 작업이 시작됐다.
송파구 개표소에는 관외사전투표와 재외국민투표 등 관외투표를 위한 라인이 2개 마련됐다. 선관위 관계자는 “원래는 라인 1개만 관외투표를 담당한다”면서 “이번에는 관외투표가 생각보다 많아 제15반을 급하게 투입했다”고 밝혔다. 사전투표율이 예상치를 웃돌면서 사전투표 중 상당수를 차지하는 관외투표도 함께 늘어난 결과다. 재외국민 투표가 증가한 것도 한몫 했다.
관외투표는 개표하는 데 더 오래 걸렸다. 밀봉된 상태로 전달됐고, 투표함도 더 늦게 도착했다. 개표 작업을 서두르기 위해 개표사무원들은 “서두르자”고 독려하며 속도를 냈다. 한 개표사무원은 “관외투표는 보통 더 오래 걸리는데 빨리 끝냈다”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개표사무원뿐만 아니라 역대 대선 사상 최초로 참가한 시민 개표참관인들도 활약했다. 전국 개표참관인 2만2000여명 중 10%인 2000여명은 취업준비생, 대학생, 주부, 회사원 등 일반 시민들이었다. 이들은 날카로운 눈으로 개표가 잘 진행되는지 주시하고, 스마트폰에 개표 과정 영상을 담았다. 의아한 점이 있으면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고등학교에 마련된 개표소에서 참관인 자격으로 개표 작업을 지켜보던 이승인(37‧여)씨는 18대 대선의 개표 과정이 부정했다는 문제 제기 때문에 참여하게 됐다“며 “참관 전엔 부정행위를 직접 목격하기 되지 않을까 우려 했지만 직접 눈으로 보니 합리적으로 진행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개표 과정에서 이의제기를 했는데 선거관리위원이 직접 자세히 답변을 해줘 선관위에 대한 신뢰가 생겼다”고 덧붙였다.
선거의 투명성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는 서다희(23‧여)씨도 “생각보다도 더 투명하고 정확하게 표를 세는 것 같아 놀랐다”며 “앞으로 ‘개표 투표용지를 조작했다’는 가짜뉴스를 들으면 친구들에게 자신 있게 그것은 거짓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최예슬 신재희 안규영 이재연 기자 smar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