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동제약㈜ 류덕희(79·사진) 회장이 지난 달 18일 '4·19혁명 대상'을 수상했다. 류 회장은 성균관대 학생운영위원장으로 시위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9일 만난 류 회장은 수상 소감 대신 “편한 길보다는 옳다고 생각하는 길을 꿋꿋이 걸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다음은 류 회장과의 일문일답.
-4·19혁명에 참여하게 된 계기는.
"당시 성균관대 화학과 재학 중에 성진회라는 서클을 만들어 친목 도모와 공부 등을 하며 지내다가 주변 추천으로 학생위원장에 출마했다. 4학년 때 1960년에 성대 학생위원장에 입후보해 선출됐다.
활동 중에 경기도학우회에서 연락이 왔다. 가 봤더니 그 모임이 바로 3‧15 선거 전에 이승만, 이기붕 지지 성명 모임이었다.
당시 경기도 각 시․군 학우회 대표들 결의의 형식으로 참석자들에게 지지 성명을 받았는데, 이때 거부하자 학생위원장 된 것을 무효로 할 수도 있다고 협박을 받기도 했다.
이 서명에 거부하여 후환이 두려웠다. 하지만 이 때 서명을 하지 않아 당당하게 4‧19혁명에 참여를 할 수 있었고 이후 4‧19의거 학생대책위원회의 구성 활동 에 참여하게 됐다."
-4·19때 어떤 역할을 했는지.
"4월 19일 아침 당시 성대 총장이던 이선근 총장을 찾아가 평화적인 시위를 할 테니 허락해 달라고 설득했다. 이 총장은 바로 허락하지 않았다. 당시 이 총장이 중앙선거관리위원이었던 사실을 몰랐으며, 시위를 마치고 학교로 돌아와서야 알았다. 총장과 면담 중에 이미 교내는 동료 학생들을 비롯한 많은 학생들이 시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성대 시위대는 다른 학교에 비해 조금 늦은 시간에 출발했다. 중앙청을 거쳐, 경무대(현 청와대) 쪽 삼일당 앞을 거쳐 광화문 네거리를 돌아 서대문 이기붕 집 앞에서 농성을 벌였다. 성대 학생처장에게 계엄이 선포되어 발포가 있을 수 있으니 학교로 무사히 복귀했으면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시위대를 이끌고 광화문 네거리와 시청 앞으로 갔다가 을지로 내무부 등을 거쳐 학교로 5시 좀 지나 귀교했다.
이기붕 집 앞까지 1500여명이 넘는 성대생들이 함께 했다. 학교로 오는 중 많은 학생들이 도중에 흩어지고 500여명이 학교에 도착한 뒤 성대생들은 이 총장을 나오라고 외쳐대기 시작했다.
세 번에 걸쳐 총장을 설득해 학생(시위대)과 총장이 만났다. 이날 이 총장은 본인이 당시 3‧15 선거가 부정선거였음을 잘 몰랐으며 책임을 통감하고 총장직에서 물러나겠다고 읍소했다. 성대 시위대의 본대는 평화적인 시위를 했기 때문에 희생자는 없었다."
-4·19혁명 이후 어려움이 많았을텐데, 지속적인 활동을 한 이유는.
"4‧19 참여가 인생의 큰 지침이 됐다. 이후 삶에도 많은 영향을 끼쳐 바르고 성실하게 살아 남에게 부끄럽지 않게 살아야 한다는 큰 계기가 됐다.
1994년 7월부터 1997년 5월까지 4·19공로자회의 전신인 사단법인 4·19회 지도위원을 지냈다.
1995년 6월부터 현재까지 4·19민주장학회 공동의장 및 사단법인 4·19육영사업회 공동회장과 이사장을 맡아 지속적으로 장학사업 등을 펼치며 4·19정신의 계승과 함양을 위해 부족하지만 노력하고 있다."
-경동제약 창업은 어떻게.
"친구들과 소규모 제약회사를 운영하다가 1975년 9월 창업했다. 창업 당시 사명은 유일상사였으나 곧 경동(京東)제약으로 바꿨다.
창업의 출발점이 ‘서울’이라는 의미와 밝은 해는 ‘동쪽’에서 떠오른다는 의미를 함께 담은 상호다. 40년이 지난 지금 경동제약은 연매출(2016년) 1586억원, 종업원 573명의 중견 제약사로 성장했다. 우리 회사는 부채가 없다.
주로 치료제 중심의 전문의약품을 생산하다 보니 대외적으로 알려진 약은 별로 없다.
하지만 40년 동안 의약품 국산화의 외길을 묵묵히 걸어왔다. 최근 연구개발센터 준공을 계기로 신약 개발에 적극 나서는 등 미래 성장 동력 찾기에 매진하고 있다.
특히 2005년 주 5일제 전면 실시가 시작되기 한참 전인 1980년 5월부터 격주 5일 근무제를 실시했고 임직원 해외 연수를 실시하고 있다."
-경동제약 향후 40년 모습을 그린다면.
"경동제약은 나눔과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실천함으로 올바른 기업의 길을 지향하고 있다.
특히 나눔과 실천이 경동제약의 전통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은 것이 가장 큰 보람이다.
앞으로 우리 회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다. 또한 경동제약은 이 시대의 전문화·특화 흐름에 맞춰 연구개발에도 매진하고자 한다. 그래야 생존할 수 있다. 아울러 꾸준히 변화도 모색할 것이다. 원료판매를 중심으로 일본과 유럽시장을 적극 공략할 계획이다.
-사회공헌이 활발하다.
"2001년 사재를 출연해 송천재단을 설립했으며 재단의 현재 기본재산 평가액은 200여억원에 이른다. 국내외 대학원생, 대학생 및 중고교생 2000여명에게 50여억원의 장학금과 학술연구비를 지급하고 각 대학, 연구기관 특히 모교인 성균관대 등에 연구개발비를 지원하는 등 매년 이익의 10% 범위에서 다양한 기부활동을 펼치고 있다."
류덕희 회장은
1937년 경기도 화성에서 태어났다. 대학 졸업 후 1975년 경동제약을 창업, 제약업계에 투신하고 있다.
성균관대 총동창회장, 재단법인 송천재단 이사장, 한국가톨릭레드리본 대표이사, 마약퇴치운동본부 이사, 한국제약협회 이사장 등으로 사회 각 분야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상훈으로 참의원 표창(1961), 국민훈장 동백장(1997), 금탑산업훈장(2003), 석탑산업훈장(2004), 자랑스런 성균인상(2009), 대한민국코스닥 대상(최우수 사회 공헌․2009), 경영자대상(2012), 2000만불 수출의탑(2014) 등이 있다.
유영대 기자 ydy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