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할 법한 이 이벤트는 사실 청년 개발자와 웹디자이너 7명이 합심해 만들었다. 이들 중 아이디어를 실행으로 옮기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한 윤병준(31·사진)씨를 8일 서울 마포구에서 만났다. 윤씨는 “국민투표로또 이벤트에 많은 분이 호응해주시고 재밌어 해주셔서 동료들 모두 신기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민투표로또 아이디어의 시작은 유시민 작가의 발언이었다. 유 작가는 20대 총선을 앞둔 지난해 4월 7일 JTBC 프로그램 ‘썰전’에서 “투표율을 높이려면 우리나라에서는 제일 효과적인 제도가 있을 것 같다. 투표 로또”라고 말했다.
윤씨는 유 작가의 아이디어가 획기적이라고 생각했다. 당시 윤씨는 LG유플러스를 그만두고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공부하며 스타트업으로 이직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는 함께 공부하던 친구들에게 유 작가의 아이디어를 실행에 옮기는 게 어떠냐고 물었다. 다들 “재밌는 생각”이라고 했다. 다만 총선이 끝난 직후라 “다음 대선 때 해보자”고 의견을 모았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고 조기 대선이 실시되면서 1년 전 윤씨 제안에 “재밌는 생각”이라고 했던 친구 6명과 윤씨가 지난 3월 초 모였다. 그리곤 본격적으로 국민투표로또 아이디어를 실행에 옮겼다. 개발자 중 대학에서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전공한 사람은 한 명뿐이다. 윤씨는 전자전기학과 심리학을 전공했다. 개발자 중엔 정치외교학을 전공한 경우도 있었다. 컴퓨터 프로그래밍 비전공자들이 재미삼아 시작한 일이 ‘대박’을 친 것이다. 윤씨는 “저도 정치를 잘 모르는 소시민이었는데, 우리 이벤트를 통해서 국민들이 선거에 더 관심을 갖게 하고 투표소까지 발걸음을 하게 하는 게 우리 목표의 최대치라고 생각했어요”라고 했다.
윤씨가 유 작가에게 이벤트 시작 소식을 알렸더니, 유 작가는 이메일을 통해 “시민의 정치참여를 북돋우는 실험에 응원을 보냅니다”라고 응원 메시지를 전했다. 당첨금을 결정하는 데에도 유 작가 조언이 큰 역할을 했다. 윤씨와 동료들은 이벤트 시작 전에 당첨금을 5만원으로 해서 여러 명에게 나눠줄지, 1등 당첨금을 큰 액수로 할지를 두고 고민했다. 유 작가는 “당첨금이 5만원인 복권으로는 대중적이 호응을 받기 어렵지 않을까요?”라고 했고, 윤씨와 동료들은 결국 1등 상금을 최대 500만원으로 정했다.
국민투표로또의 상금은 후원금으로 만들어진다. 후원금은 9일 오전 0시 기준으로 807만8000원이 모였다. 윤씨는 “저희가 공인받은 기관도 아닌데 생각보다 후원금을 많이 보내주셔서 감사해요”라고 말했다. 그는 “5959원을 보내주신 분이 계셨어요”라며 “‘오구오구’라고 읽을 수 있는데 마치 ‘우쭈쭈’ 우리를 응원해주는 어감이어서 기억에 남아요”라고 회고했다. 윤씨가 일하는 스타트업 ‘다노’의 대표도 윤씨가 나온 기사를 보고 “정말 잘했다”며 후원금을 냈다.
윤씨와 동료들은 자비를 쓰면서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다. 국민투표로또는 후원금에서 서버 운영비 등을 제외한 액수를 당첨자에게 지급한다. 윤씨는 “운영비에 저희 모임비, 인건비, 식비는 넣지 않을 생각이에요. 그래서 오히려 저희는 돈을 쓰고 있는 입장이죠”라며 “그래도 동료들 모두 불만은 없어요”라고 했다.
윤씨는 9일 오후 8시까지 후원금을 받은 뒤 이날 오후 9시부터 페이스북 라이브를 통해 추첨을 진행한다. 이때 추첨 방식을 설명하고 1, 2, 3등 당첨자들과 통화도 할 계획이다. 또 국민투표로또 운영에 관한 시민들의 질문들도 답변할 예정이다. 윤씨는 이벤트 운영의 투명성을 강조했다. 그는 “우리를 믿고 보내준 후원금이기 때문에 이벤트가 끝나면 입금내역과 영수증도 다 공개할 생각이에요”라고 했다. 당첨자 추첨에 사용한 프로그래밍 코드도 공개한다.
윤씨는 동료 6명과 함께 다음 총선, 대선 때에도 국민투표로또 이벤트를 진행할 계획이다. 그는 “앱·사이트 등의 개발을 통해 세상에 조금 더 좋은 역할을 하는 게 인생 목표”라면서 “앞으로 여성 안전이나 환경 문제 해결에 도움 되는 서비스를 개발하고 싶어요”라고 했다.
윤성민 손재호 기자 wood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