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대 대선은 시종일관 ‘문재인 대 반(反)문재인’ 구도로 치러졌다. 진보 성향 유권자와 중도‧보수 성향 유권자가 큰 틀에서 맞붙은 셈이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전부터 30%대 지지율을 안정적으로 확보했다. 중도‧보수층의 관심은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안희정 충남지사,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에게 차례로 옮겨 갔다. 또 대통령 탄핵 사태로 인한 짧은 대선 준비 기간은 정책 대결보다 네거티브 전쟁을 부추겼다.
‘보수 적자’ 없는 선거
이번 대선은 지난 3월 10일 박 전 대통령 탄핵이 발단이었다. 이후 ‘장미 대선’ 레이스가 예고됐으나 전통적인 보수 진영은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으로 분열됐다. 뚜렷한 대선 후보를 찾지 못한 보수 유권자들은 첫 대안으로 반 전 총장을 선택했다. 반 전 총장은 기존 정치권에 몸담지 않았던 탓에 ‘탄핵 책임론’에서 비껴나 있었다.
그는 지난 1월 12일 귀국하자마자 대선 출마를 시사했고, 기대감은 귀국 직후 실시된 갤럽 여론조사 결과, 20%대 지지율이 나왔다. 하지만 본격적인 검증이 시작되며 잇단 구설에 휘말리자 반 전 총장은 지난 2월 1일 불출마를 선언했다.
이후 중도‧보수 표심은 유랑했다. 지난 2월 갈 곳 잃은 중도 표심이 일부 안 지사와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에게 쏠린 적도 있었다. 하지만 각각 ‘선의’ 발언과 대선 불출마 선언으로 레이스에서 이탈했다. 문 후보의 유일한 대항마로 지목된 안철수 후보의 상승세가 그 뒤 두드러졌다. 3월 말부터 급상승한 지지율은 지난달 초 37%까지 올랐다. 일부 여론조사에서 문 후보를 앞지르며 양강 구도를 형성했다.
안철수 후보의 상승세는 오래가지 못했다. ‘유치원 공약’ 논란과 2차 TV 토론회를 거치며 부정 여론이 거세지자 보수 표심은 다시 등을 돌렸다. 지지율이 지난달 중순을 거치며 하락했고 마지막으로 공표된 지난 2일 여론조사에서 20%대에 머물렀다. 사드 배치 문제와 ‘송민순 회고록 논란’이 재점화되면서 선거 구도가 전통적인 보수‧진보 구도로 재편된 점도 야당 출신인 그에게 악재였다.
수혜자는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였다. 홍 후보는 전통 보수 진영의 대선 후보로 ‘적자’를 자처하고 나섰다. 대구‧경북(TK)의 민심이 홍 후보에게 쏠리면서 ‘1강 2중 2약’ 구도가 나타났다. 한 야권 관계자는 “이명박정부, 박근혜정부 탄생에 공헌했던 보수 유권자는 문 후보에 대한 거부감이 강했다”면서도 “중도‧보수의 어떤 후보도 보수표를 확고히 선점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박명호 동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선거가 진행되며 ‘보수의 대안이냐 대표냐’를 놓고 안 후보와 홍 후보가 경합했는데 둘 다 보수표를 결집하기엔 부족했다고 본다”고 했다.
정책보다 네거티브 전쟁에 집중된 화력
이번 대선은 두 달이 채 되지 않았던 선거 기간 탓에 후보자 검증에 대한 시간 여유가 부족했다. 가치와 철학을 공유하는 정책을 통해 점진적으로 유권자를 설득해 나가는 방식이 아니라 폭발적으로 여론을 돌려세우는 ‘네거티브 전쟁’에 각 후보 캠프는 사활을 걸었다. ‘아니면 말고’ 식의 소모적인 공방이 가열됐다.
특히 호남을 중심으로 문 후보에 대한 ‘호남 홀대론’이 되살아났다. 안 후보는 같은 지역에서 ‘MB(이명박) 아바타’로 불렸다. 문 후보의 아들인 준용씨의 한국고용정보원 특혜 취업 의혹은 근거 없는 의혹들이 뒤섞여 빠르게 전파됐다. 안 후보의 부인 김미경 서울대 교수가 한국과학기술원(KAIST)와 서울대에 안 후보의 압력으로 채용됐다는 의혹도 허위사실이 몇 마디 더해져 급속도로 퍼졌다.
민주당과 국민의당은 하루 평균 6~7건에 달하는 네거티브 논평을 쏟아냈다. 각 캠프 상황실이 네거티브 공세 방법과 방어책을 각 지역위원회에 하달할 정도였다. 김만흠 한국정치아카데미 원장은 “특히 안 후보가 네거티브를 제대로 방어하지 못했다”며 “지지율 급락 등 손해를 많이 본 케이스”라고 했다.
이런 경향은 SNS가 발달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지난 19대 대선에 비해 비약적으로 발달한 트위터, 페이스북 및 모바일 메신저는 ‘지라시’ 형태로 네거티브 메시지를 퍼 나르는 도구 역할을 했다. 인터넷상에서 ‘가짜뉴스’도 기승을 부렸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지난 1일까지 단속한 사이버상의 선거법 위반 행위는 3만4711건으로 지난 대선 단속 결과에 비해 5배가 넘는다. 이중 허위사실 유포에 해당하는 사례만 2만2499건이었다.
각 후보들이 정책 대결 자체를 기피했다는 분석도 있다. 이념적 성향이 강하게 드러나는 정책을 부각시키는 게 득표 전략에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는 판단이다. 실제 지난달 10일까지였던 중앙선관위의 10대 공약 마감시한을 지킨 후보는 단 한명도 없었다. 문 후보와 홍 후보는 지난달 13일 가장 늦게 제출했다.
TV토론 시청률 최고치… 주요 변수 급부상
대선 전까지 모두 6차례 방영된 TV 토론은 대선 레이스의 향방에 큰 영향을 끼친 변수였다. 시청률 조사회사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지난 2일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가 주관한 마지막 대선 후보 TV토론 시청률은 36%(전국 기준)였다. 정치 분야를 주제로 한 지난달 23일 토론의 시청률이 38.5%로 가장 높았다. 18대 대선 TV 토론 최고 시청률이 34.9%였던 것을 감안하면 상승한 수치다.
TV 토론회로 가장 큰 피해를 본 것으로 조사된 이는 안 후보다. 한국 갤럽이 지난달 25일부터 27일까지 전국 성인남녀 1006명을 조사해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44%가 TV 토론 시청 이후 안 후보에 대한 이미지가 전 보다 나빠졌다고 밝혔다.(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실제 안 후보의 지지율은 첫 TV 토론 이후 하향세를 탔다. 국민의당 내부에서도 2차 토론에서 불거진 ‘갑철수’ 발언이 유권자들의 비호감을 불렀다는 평가를 내렸다. 가상준 단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짧은 기간 동안 정책 검증이 사라진 탓에 TV 토론 영향이 컸다고 본다”며 “실제 안 후보의 지지율은 하락하고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 심상정 정의당 후보의 지지율은 올랐다”고 지적했다.
문동성 기자 theMo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