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대통령선거는 사전투표가 처음 도입됐다. 지난 4~5일 전국에서 실시됐고, 1100만명이 이미 투표를 마쳤다. 사전투표율은 지난해 총선 때의 2배를 넘어서는 26.06%를 기록했다. 하지만 사전투표에서는 출구조사가 이뤄지지 않았다. 본 투표에 영향을 줄 수 있어 금지됐고, 방송사 출구조사는 9일에만 실시된다.
예상을 뛰어넘는 높은 사전투표율에 유권자의 무려 4분의 1이 출구조사에서 제외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방송사마다 오랜 시간 준비해온 대선 출구조사가 얼마나 정확하게 표심을 찾아낼 수 있을지 주목되고 있다.
◇ 330개 투표소 10만명 대상
지상파 3사와 한국방송협회가 구성한 '방송사 공동 예측조사위원회'(KEP)는 오전 6시부터 오후 8시까지 전국 330개 투표소에서 약 9만9천명을 대상으로 진행된다.
칸타퍼블릭, 리서치 앤 리서치, 코리아리서치센터 등 3개 여론조사기관의 조사원 1650명이 각 투표소 출구로부터 50m 이상 떨어진 지점에서 투표를 마치고 나온 유권자 5명마다 1명씩을 대상으로 실시하고 있다.
이렇게 집계된 조사 결과는 지상파 3사에 각각 전달돼 투표가 종료되는 오후 8시 정각에 예상 당선자와 득표율이 동시 발표된다. 심층조사 결과는 오후 8시 30분부터 방송될 예정이다. 이번 조사의 오차한계는 출구조사의 경우 95% 신뢰수준에서 ±0.8%포인트, 심층조사는 95% 신뢰수준에서 ±2.5%포인트로 KEP는 예상했다.
◇ 사상 첫 '심층출구조사'
“어느 후보에게 투표하셨나요?”
“그 후보를 찍은 이유는요?”
“학력과 소득 수준을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출구조사에 응하는 유권자 일부는 이런 질문을 받고 있다. 지난 선거까지 “누구를 찍었느냐”만 묻던 방식이 이번에 확 바뀌었다. KEP는 국내 선거 최초로 ‘심층출구조사(Exit Poll with a Long-form)'를 도입했다. 심층출구조사는 “누구에게 투표했나”뿐 아니라 “누가 투표했나” “왜 투표했나” “어떤 기대를 갖고 있나” 등을 파악하는 조사 기법이다.
투표자에게 성별, 연령, 소득, 지역, 교육 수준, 결혼 여부, 종교 등 인구통계학적 질문을 던져 성향을 파악하고, 이어 후보 결정 요인, 정치 성향, 차기 정부 과제, 사회 현안 의견 등 심층적인 질문을 추가로 던진다. 약 130명의 조사원이 전국 63개 투표소에서 약 3천300명을 대상으로 16개 문항을 심층 조사하고 있다.
‘표심’을 좀 더 정확하고 깊숙하게 들여다보는 것이다. 이런 조사 방식은 미국 유럽 등 선진국에서 시행하고 있으나 국내에선 막대한 비용 때문에 시도되지 못했다. 지상파 3사는 10억원 이상 소요되던 기존 출구조사에 비해 훨씬 많은 자금을 투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KEP 관계자는 “지지 후보만 묻는 기존 출구조사와 심층출구조사를 병행하고 그 결과에 통계학적 가중치를 부여한다”며 “어떤 배경과 생각을 가진 국민이 어떤 후보를 지지했고, 구체적으로 어떤 정책과 기대 때문에 지지했는지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KEP는 심층출구조사를 위해 통계학과 언론학 전문가를 대거 자문위원으로 영입했다. 고려대 통계학과 박유성 교수, 숙명여대 통계학과 김영원 교수, 서강대 경영학과 이윤동 교수,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이준웅 교수 등이 참여했다.
박유성 교수는 언론 인터뷰에서 “이제껏 출구조사라고 했던 건 사실상 출구조사가 아니었다. 학문적으로 말하면 이번에 시도하는 출구조사가 진짜 출구조사”라며 “선거 보도를 출구조사를 넘어 민주주의를 위한 출구조사가 비로소 이뤄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심층출구조사 결과는 다양한 배경을 가진 국민이 어떤 이유로 어떤 정책과 후보를 지지했는지 보여준다. 국민의 생각이 명확하게 드러나는 것이어서 당선자가 국정에 반영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며 “민주주의를 통해 국정 방향을 제시하는 조사”라고 했다.
◇ 사전투표자는 빠졌는데…
KEP는 출구조사의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사전투표 결과를 '우회적으로' 반영키로 했다. 방송협회 관계자는 "선관위로부터 사전투표자의 지역, 성별, 연령 등 자료를 미리 받아 '인구통계학적으로 비슷한 유권자는 유사 성향을 가질 것'이라는 가정하에 본조사 결과를 보정하는 과정을 거친다"고 설명했다.
본투표 출구조사에서 나타난 지역별 표심, 성별 표심, 연령대별 표심을 사전투표 유권자 표본에 반영해 함께 집계하겠다는 것이다. 가중치 부여 등 여러 가지 통계학적 기법이 동원될 것으로 보인다. KEP 관계자는 "심층출구조사 등을 통해 과거보다 더 깊숙한 유권자 심리를 파악할 수 있어 한층 정확한 결과가 도출될 것으로 기대한다"며 "사전투표를 처리하는 방식이 성공적으로 적용되면 다음 선거에서도 좋은 선례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태원준 기자 wjt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