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유세 중 성희로 피해자가 된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의 딸 유담씨는 다시 아버지 유세현장에 복귀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피해자가 숨어야 하는 일은 저희가 살아가야 할 우리나라에서 절대 있어선 안 될 일입니다." 이 말은 성범죄를 바라보는 한국 사회의 시선을 정면으로 겨냥하고 있다.
지난 4일 서울 홍대 앞 유세 현장에서 불미스런 일을 당한 유담씨는 5일 하루 유세를 쉬었다. 그러나 6일 오후 유승민 후보와 함께 수원월드컵경기장 유세 현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대중을 향해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유승민 후보 딸 유담입니다. 불미스런 사건이 생겨서 많은 분이 위로해주시고 격려해주셔서 우선 정말 감사드린다는 말씀 전하고 싶습니다. 하루 동안 쉬면서 생각해 봤어요. 이런 일이 생겼을 때일수록 더 당당히 나서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피해자가 숨어야 하는 일은 절대 있어선 안 되고, 유승민 후보가 꿈꾸는 대한민국에서는 결코 없을 겁니다."
성범죄가 발생하면 '피해자'에 관심이 쏠리곤 한다. 지난달 동국대 남학생이 숙명여대 건물에 침입해 여학생을 성추행하고 폭력을 휘두른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은 인터넷에서 '숙명여대 성추행'이란 검색어로 회자됐다. 가해자보다 피해자에 주목하는 시선이 고스란히 드러난 현상이었다.
지난해 전남 신안의 섬마을에서 발생한 성폭행 사건도 피해자가 여교사인 점에 초점을 맞춰 ‘섬마을 여교사 성폭행 사건’으로 불렸다. 심각한 문제로 대두된 화장실 몰카(몰래카메라)와 관련해 여자화장실 칸마다 스티커가 붙어 있는 경우를 볼 수 있다. '몰카를 설치해선 안 된다'는 말 대신 피해자에게 '몰카가 있을 수 있으니 조심하라'는 문구만 담겨 있다.
이렇게 피해자가 부각되고 피해자에게 초점이 맞춰지는 상황에서 성범죄 피해자가 된다는 건, 그 순간 '2차 피해'에 노출된다는 뜻이 된다. 이에 성범죄 피해를 당하면 스스로를 감추고 숨어들어야 하는 입장에 놓이곤 했다. 잘못한 게 없는 데, 당했을 뿐인데 뭔가 죄를 지은 것 같은 심리적 죄책감에 시달리기 일쑤다.
유담씨가 말한 "피해자가 숨는 나라"는 이런 세태를 지적한 거였다. 많은 사람이 한국사회에서 성범죄가 다뤄지는 '공식'을 떠올리며 '이제 유세현장에서 그를 볼 수 없겠구나' 생각하던 때에 그는 당당히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행동은 성범죄 피해자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이 달라져야 한다는 웅변이었다.
태원준 기자 wjt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