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단서 빠진 사람 삐칠까봐"… 결국 무산된 ‘섀도 캐비닛’

입력 2017-05-08 05:00
대선 후보들이 JTBC(중앙일보 ·한국정치학회 공동 주관)가 주최하는 대선후보 토론회 방송 시작 전 기념촬영하고 있다. 국민일보 DB

19대 대선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추측만 무성했던 각 후보의 ‘섀도 캐비닛(예비 내각)’ 발표는 결국 무산되는 분위기다. 섀도 캐비닛을 공개할 경우 닥쳐올 '역풍'을 감당하지 않겠다는 판단으로 보인다.

‘그림자 내각’ ‘예비 내각’으로 불리는 섀도 캐비닛은 집권할 경우 기용할 총리와 각 부처 장관을 미리 구성하는 것이다. 조기 대선으로 탄생하는 차기 정부는 인수위원회를 거치지 않는다. 바로 국정을 맡아야 하는 만큼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섀도 캐비닛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많았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심판이 진행되던 지난해 12월부터 “조기 대선이 치러진다면 적절한 시기에 섀도 캐비닛을 제시하겠다”고 밝혔다. 지난달 27일 방송기자클럽 토론회에선 총리 인선 기준을 공개하며 이렇게 말했다. “제가 영남인 만큼 영남 출신이 아닌 분을, 적어도 초기에는 그런 분을 총리로 모시겠다. 적어도 (선거) 막바지에는 (총리 후보자를) 국민께 알려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며 섀도 캐비닛 공개 가능성을 시사했다.

그러나 민주당 공동선대위원장인 우상호 원내대표는 지난 1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현 시점에서 섀도캐비닛을 구성하거나 공표할 가능성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문 후보의 살인적인 유세 일정 때문에 인사 작업을 할 여유가 없다는 게 이유였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는 인선 기준 대신 통합정부 구상만 밝힌 상태다. 안 후보는 지난달 28일 개혁공동정부 로드맵을 발표하며 “책임총리를 국회 추천을 받아 지명하겠다. 원내교섭단체 대표가 합의해 추천하면 그에 따르겠다”고 말했다. 장관 인선도 책임총리의 추천을 최대한 따르겠다는 입장이다. 이에 ‘개혁공동정부 준비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 대표의 역할에 이목이 쏠렸다.

김 전 대표는 7일 페이스북을 통해 선거일 전에 차기 정부 구상을 밝히지 않겠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김 전 대표는 “이번 대선에서 국민이 편안하게 선택하실 수 있도록 해보려 했지만 더 이상 노력할 필요가 없게 돼가고 있다. 국민 여론이 패권세력의 재집권을 막아 세우고 있다”면서 “안철수 개혁공동정부에 참여할 신뢰할 만하고 유능한 인사들을 많이 찾았다”고 전했다. 그러나 누구인지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았다.

박지원 국민의당 선거대책위원장도 이날 기자단 오찬간담회에서 섀도 캐비닛이 발표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그의 설명에서 후보들이 왜 섀도 캐비닛 공개에 주저하는지 이유를 엿볼 수 있다. 

박 위원장은 “문재인 후보도 (총리 후보자를) 말하지 않을 것이다. 그걸 왜 말하겠나. 국회의원 선거 할 때도 지역 사무국장을 누가 할지 미리 얘기 안한다. 1명 이름을 말하면 그 사람을 싫어하는 5명이 그때부터 일을 안 한다”면서 “지금까지 예비 내각을 발표한 선거는 우리나라에서 한 번도 없었다”고 했다.

유시민씨는 지난 4일 방송된 JTBC ‘썰전’에서 문 후보가 섀도 캐비닛을 공개하지 않은 이유를 4가지로 분석하기도 했다. ①지지율에 여유가 있는 상황에서 굳이 예비내각을 발표할 필요가 없다. ②좋은 취지로 한다고 해도 ‘벌써 대통령 다 된 것처럼 행동한다’고 역공을 받을 수 있다. ③한 사람을 후보로 지정하면 나머지 캠프 사람들이 의욕을 상실한다. ④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야당 후보이기 때문에 합법적이며 실효성 있는 검증을 하기 어렵다. 

섀비 캐비닛을 둘러싼 후보들의 복잡한 속사정이 있었던 셈이다.

박상은 기자 pse021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