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국제기관을 상대로 치졸한 ‘돈 압박’ 카드를 또 뽑아들었다. 일본 정부가 올해 유네스코 분담금 34억8000만엔(약 350억원)의 지급을 보류하기로 했다고 산케이신문이 7일 보도했다.
일본 정부는 유네스코 집행위원회가 지난 4일 당사국 사이에 의견차가 있는 세계기록유산 신청에 대해 당사국의 사전 협의를 요구하는 국제자문위원회(IAC) 중간보고서를 채택한 것을 염두에 두고 자금 압박 카드를 꺼낸 것으로 분석된다.
중간보고서는 당사국의 의견이 대립할 경우 대화를 통한 해결을 촉구하되 반대의견을 추가한 형태의 등재도 가능하도록 했다. 또 합의가 되지 않으면 최장 4년간 논의를 거쳐 IAC가 유네스코 사무국장에게 최종 권고를 하도록 했다. 이러한 개선안은 IAC가 추가 검토를 거쳐 오는 10월 집행위원회에 최종 보고서를 제출하면 정식으로 채택된다.
중간보고서의 내용을 고려할 때 일본 정부가 노리는 것은 대략 세 가지로 압축된다. ①한국 중국 네덜란드 등 민간단체가 추진하는 일본군위안부 자료의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원천적으로 차단한다. ②차선책으로 일본군위안부 자료를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할 때 일본 정부의 장황한 반대 의견을 첨부한다. ③이러한 방안을 관철시키기 위해 제도 개선안의 즉각적인 시행을 요구한다.
일본 정부는 지난해에도 중국의 난징(南京)대학살 관련 자료가 2015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자 분담금 38억5000만엔(약 387억원)의 지급을 연말까지 보류하며 유네스코를 거세게 압박했다. 가진 자의 볼썽사나운 민낯을 유감없이 보여준 것이다.
당시 아사히신문은 ‘일본과 유네스코, 절도(節度) 잃은 분담금 보류’라는 제목의 사설을 통해 “돈의 힘으로 주장을 관철하려는 것이라면 너무나도 절도를 잃은 것”이라며 일본 정부의 유네스코 분담금 납부 보류를 비판했다. 일본 정부의 행태가 얼마나 치졸했으면 일본 언론까지 나서서 강하게 비판했겠는가.
일본이 한국 중국 네덜란드 등 피해 국가 여성들을 일본군위안부로 끌고가 천인공노할 범죄를 저질렀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피해 할머니들의 증언이 끊이지 않고 있으며 역사적 문건도 차고 넘친다. 일본 정부가 제아무리 범죄행위를 가리려고 해도 가릴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일본 정부는 유네스코 분담금을 볼모로 삼지 말고 즉각 무릎 꿇고 사죄해야 마땅하다.
분담금을 내는 것은 회원국의 의무사항이다. 분담금을 무기로 유네스코의 결정을 좌지우지하려고 하면 안 된다. 일본 정부의 대응 태도는 옹졸하고 유치하고 저급할 뿐이다. 역사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일본에게서는 경제대국다운 면모를 찾을 수 없다.
일본군위안부 문제로 피해를 입은 국가들은 전 세계의 양심적인 시민단체들과 연대해 일본 정부가 입장을 바꾸도록 강하게 몰아붙여야 한다. 유네스코는 한두 국가의 전횡에 휘둘리지 말고 본연의 역할과 임무를 수행하는데 최선을 다하기 바란다.
염성덕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sdyu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