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투표 결과를 가늠해보려면 몇 가지 결정적 변수에 주목해야 한다. ①역대 최고치에 도전하는 투표율 ②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출렁여온 보수층 여론 ③TV토론에서 유력 주자들을 제치고 선전한 유승민 심상정 후보의 득표력이 남은 이틀간 지켜봐야 할 관전포인트로 꼽히고 있다.
◇ 80%대 투표율… 누구에게 유리할까
민주화 이후 대통령선거 투표율은 '3김 시대'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대통령 직선제가 전격 실시된 1987년 13대 대선은 무려 89.2%의 투표율을 기록했다. 김대중 김영삼 김종필의 '3김' 정치인이 모두 출마했을 때다. 유권자 2587만명 중 2306만명이 투표에 참여했다. 김영삼 대통령이 탄생한 1992년 14대 대선은 81.9%,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된 1997년 15대 대선은 80.7%였다. 투표용지에 '3김' 정치인의 이름이 있던 13~15대 대선 투표율은 모두 80%를 넘겼다.
이들이 사라진 16~18대 대선에선 60∼70%대에 그쳤다. 노무현 대 이회창의 대결이던 2002년 16대 대선 투표율은 15대보다 10%포인트가 뚝 떨어진 70.8%였다. 이명박-정동영 후보가 맞붙어 일찌감치 승부가 갈렸던 17대 대선은 63.0%로 민주화 이후 가장 낮았다. 박근혜 후보와 문재인 후보가 맞붙은 18대 대선은 보수와 진보의 진영 대결, 젊은층과 장년층의 세대 대결이 벌어져 75.8%로 뛰어올랐다. 하지만 80% 벽은 넘지 못했다.
19대는 대선 사상 처음 도입된 사전투표에서 이미 1100만명이 넘는 유권자가 한 표를 행사했다. 26.06%의 투표율이 벌써 확보돼 있다. 3김 시대 같은 '80%대 투표율'이 나올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민주화를 가져온 6월 항쟁 직후의 13대 대선처럼 박근혜정권을 무너뜨린 촛불시위 직후의 선거여서 1987년 89.2% 기록에 도전할 만하다는 기대도 있다.
투표율이 높으면 진보적 후보에게 유리하다는 건 그동안 정설로 받아들여졌다. 높은 투표율은 장년층보다 투표 참여도가 낮은 젊은층이 많이 투표했다는 뜻이었다. 20대와 60대 이상의 투표율을 비교하면, 1997년 68.2%와 81.9%, 2002년 56.5%와 78.7%, 2007년 46.6%와 76.3%, 2012년 68.5%와 80.9%로 늘 60대 이상이 더 높았다. 따라서 이번 대선의 투표율이 80%를 웃돌 만큼 높아진다면 젊은층의 적극적인 참여, 즉 진보적 후보에게 유리한 상황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이를 단정하기 어렵게 만드는 새로운 변수가 등장했다. 급속한 고령화로 장년층 유권자 수가 젊은층에 비해 상대적으로 크게 늘어났다. 이번 대선 유권자의 연령별 분포를 보면, 60대 이상이 24.4%로 가장 많고, 20대가 15.9%로 가장 적다. 50대 이상 장년층을 합하면 44.4%가 되지만, 30대 이하 청년층은 다 더해도 35.1%에 그친다.
청년층과 장년층 투표율이 똑같이 상승할 경우 장년층 표의 파괴력이 더 큰 상황이 됐다. 청년층 투표율 상승의 위력이 예전처럼 크지 않을 수 있다는 뜻이다. 또 사전투표에서 매우 높게 나타난 호남 투표율이 영남 보수층의 9일 투표율 상승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 보수 표심은 어디로…
한국 대통령 선거에서 보수 표심이 이렇게 출렁인 적은 없었다. 이회창→이명박→박근혜로 이어져온 보수 진영 대선후보는 늘 확고했고, 이들을 지지한 유권자들은 별 다른 고민 없이 투표장에 가곤 했다. 이번 대통령 선거는 민주화 이후 우리나라 보수층이 “누구를 찍을까” 심각하게 고민한 첫 번째 대선이 됐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으로 갑자기 치러지는 조기 대선인 까닭에 보수 진영은 뚜렷한 후보 없이 선거를 마주했다. 박근혜정부 지지기반이 와해되면서 ‘콘크리트 지지층’에 속했던 보수 유권자도 길을 잃었다. 지지율 1위로 ‘대세론’을 굳혀가는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바라보며 이들은 대안을 찾아 나섰다.
가장 먼저 시야에 들어온 건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과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었다. 황 대행이 받았던 10% 안팎의 지지율, 반 전 총장에게 갔던 20대% 중반의 지지율은 보수 표심이 상당히 작용한 결과였다. 그러나 반 전 총장은 몇 주 못 가 스스로 포기했고, 황 대행은 막판까지 고심하다 결국 불출마를 선언했다.
다시 방향을 잃은 보수층은 새롭게 탐색을 시작했다. 문재인 후보 1강 구도가 지속되던 선거판이 흔들린 것은 국민의당 경선 직후였다. 안철수 후보가 경선에서 압승하며 대선후보로 확정되자 그의 지지율이 치솟았다. 10%대에 머물던 게 30%대로 수직상승했고, 급기야 문재인 후보를 앞서는 여론조사 결과가 잇따라 나왔다.
그렇다고 문재인 후보 지지율이 크게 빠진 것은 아니었다. 이런 출렁임은 관망하던 부동층이 안 후보에게 대거 쏠린 결과로 해석해야 한다. 그 부동층의 다수는 길을 잃었던 보수표였다. “왠지 문재인 싫다”는 여론, “문재인은 안 된다”는 시선이 모여 “문재인을 막아낼 수 있는 후보”로 찾아낸 것이 안철수였다.
2012년 안철수의 신선함이 몰고 왔던 ‘안풍(安風)’은 이제 문재인이 싫어 안철수를 지지하는 ‘안풍’으로 바뀌어 있었다. 이 바람은 2단계 과정을 거쳐 잦아들었다. 민주당의 네거티브 공세는 오랜 경험을 가진 정당에서 볼 수 있는 ‘선거 기술’의 결정판이었다. 안철수 후보를 겨냥해 각종 검증·비판 이슈를 만들어내며 불과 1~2주 만에 상승세를 차단했다.
이어 TV토론이 잇따라 열렸다. 안철수 후보의 언변이 그리 탁월하지 않다는 사실을 유권자들은 확인했다. ‘말싸움 토론’ ‘순발력 경쟁’에서 그는 점수를 잃고 TV토론의 최대 피해자가 됐다. TV토론 이후 보수층 유권자의 SNS에 나돌기 시작한 표현이 “우리의 존재감을 보여주자”는 말이었다. “문재인을 막아야 한다”던 주장이 “막지 못한다면 우리를 무시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당선 가능성이 낮지만 홍준표를 찍어 존재감을 보여주자”는 쪽으로 선회하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도 문재인 후보 지지율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절대로 많이 떨어지지 않지만, 결코 많이 높아지지도 않는다. 결국 문재인 후보의 당락은 보수표에 달린 상황이 됐다. 안철수를 찍어 문재인을 막을 것이냐, 홍준표를 찍어 존재감을 보일 것이냐. 보수층의 고민이 어떤 결론으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 유승민 심상정의 막판 상승세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와 심상정 정의당 후보가 선거 막판에 뚜렷한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바른정당 탈당 사태는 여론의 강한 역풍에 부닥치며 오히려 유승민 후보에게 '나쁘지 않은' 상황을 가져다줬다. 심상정 후보는 더불어민주당이 견제하고 나설 정도로 진보 유권자들에게 크게 어필하고 있다.
TV토론을 통해 "괜찮은 인물"이란 인식이 퍼지면서 두 후보에 대한 유권자의 주목도는 계속 높아져 왔다. 이들이 문재인 안철수 홍준표 후보의 표를 얼마나 잠시하느냐에 막판 판세가 미묘한 요동을 겪을 수 있다. 심 후보가 많은 표를 얻으면 문 후보가, 유 후보가 득표율을 끌어올리면 홍 후보와 안 후보가 각각 손해를 볼 것으로 예상된다.
만약 후보 간 격차가 크지 않은 박빙 승부가 벌어질 경우 이들의 득표율이 최종 결과를 좌우할 수 있다는 분석까지 나온다. '인물론'과 '사표 방지 심리' 사이에서 유승민 심상정 후보가 얼마나 선전할지는 꼭 지켜봐야 할 요소가 됐다.
태원준 기자 wjt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