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글라데시에서 핍박받는 소수민족 ‘줌머인’를 아시나요?

입력 2017-05-05 18:46 수정 2017-05-05 22:48
30명 남짓한 사람들이 서툴지만 또박또박한 한국어로 “군대는 로멜 차크마 군의 시신을 불태워 훼손했다. 군은 고인의 시신을 철저히 유린했다”고 외쳤다. 이들이 손에 든 현수막과 피켓에는 사망한 로멜(20)군의 얼굴이 인쇄돼 있었다.
1일 주한 방글라데시 대사관 앞에서 ‘로멜 차크마 고문치사 사건’ 항의 기자회견에 참석한 줌머인연대 회원들. (왼쪽부터/시계반대방향으로)드원(여), 로넬 차크마 나니, 지코, 차크만 슈만갈, 니킬, 가나, 프로나티(여)

‘줌머(Jumma)’족 학생위원회 사무국장 로멜군은 지난달 19일 방글라데시 동남부 치타공(Chittagong)에 위치한 병원에서 군과 경찰의 감시 하에 치료 도중 사망했다. 같은 달 5일 방글라데시 군 당국이 차량에 불을 지른 혐의로 그를 붙잡아 고문하고 병원으로 이송한 지 15일 만의 일이다. 그러나 지역 경찰서 중 로멜군 관련 신고를 접수한 곳은 없던 것으로 드러났다. 군의 만행은 계속됐다. 군은 부검을 마친 로멜군의 시신을 가족으로부터 빼앗아 불태워 훼손했다.

방글라데시 소수민족 공동체 ‘재한 줌머인연대(대표 보디 프리요)’는 지난 1일 오전 서울 용산구 주한 방글라데시 대사관 앞에서 방글라데시 군 당국의 ‘로멜 차크마 고문치사 사건’에 항의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줌머족은 방글라데시 동남부 ‘치타공 지역 산악지대(Chittagong Hill Tracts)’에 살고 있는 11개 소수민족을 통칭하는 말이다. 줌머인연대는 기자회견문에서 “국제사회가 치타공 지역의 산악지대에서 벌어지고 있는 인권범죄를 주시하고 조사를 벌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로넬 차크마 나니(45) 재한 줌머인연대 자문위원장은 지난 1일 국민일보와 인터뷰에서 “방글라데시 정부에게 탄압받는 줌머족의 실상을 한국 정부와 한국민이 꼭 알아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고문 끝에 사망한 로멜군도 줌머인이다. 인구의 98%가 벵골인이며 이슬람교를 믿는 방글라데시에서 줌머인은 탄압받고 있다. 줌머인은 인종적으로 몽골계에 속하며 85%가 불교신자다. 접근이 어려운 산악지대에서 산 탓에 문화도 벵골인과는 다르다. 또 1972년 ‘샨티 바하니(Shanti Bahini)'라는 군부대를 창설해 게릴라전을 펼치며 자치권을 요구했다. 1971년 강력한 민족주의를 기반으로 파키스탄으로부터 독립해 국가를 세운 신생국 방글라데시 입장에서는 인종, 종교, 문화도 다르고 자치권마저 원하는 줌머족이 좋게 보일 리 없었다. 이는 셰이크 무지부르 라하만(Sheikh Mujibur Rahman) 방글라데시 초대 수상이 자치권을 요구하는 줌머족에게 던진 말에 단적으로 드러나 있다. 그는 “민족적 정체성을 포기하고 벵골인이 되시오”라고 말했다.

방글라데시 수립과 함께 시작된 줌머인에 대한 억압은 현재도 진행 중이다. 1997년 12월 2일 방글라데시 정부와 줌머족의 지역정당 PCJSS(Parbatya Chattagram Jana Samhati Samity)가 ‘치타공 산악지대’ 협정(CHT 평화협정)을 맺기 전까지 줌머인을 대상으로 한 방글라데시 정부의 살인, 납치, 고문, 강간이 끊이지 않았다. 분란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벌어진 일이다. 협정을 맺기 전까지 13번의 대량학살이 있었고 이로 인해 줌머인 수천명이 죽었다.

CHT 평화협정 이후에도 달라진 것은 없다. 협정이 체결된 이후 약 12차례 정도 줌머인을 향한 공격이 있었다. 1994년 6월 한국을 찾은 로넬씨도 “평화협정이 맺어진 이듬해에 방글라데시로 돌아갔습니다”고 말하며 “하지만 2년 만에 다시 한국으로 왔습니다”고 밝혔다. 협정의 많은 부분이 시행되지 않아서다.
로넬 차크마 나니(45) 재한 줌머인연대 자문위원장. 로넬씨는 방글라데시 정부의 탄압을 피해 1994년 한국에 와 현재는 김포시 외국인 주민지원 센터에서 벵골어 통역사로 일하며 재한 줌머인연대의 일을 돕고 있다.

로넬 자문위원장은 당장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문제로 치타공 산악지대 주변에 배치된 방글라데시 군의 즉각적인 철수를 꼽았다. 치타공은 전 세계에서 군대가 가장 밀집한 지역 중 하나다. ‘국제 선주민 문제를 위한 실무그룹(International Work Group for Indigenous Affairs)'이 2012년에 내놓은 보고서는 치타공 산악지대 내 줌머인 40명당 방글라데시 군인 1명이 배치돼 있다고 한다. 벵골인 1750명당 1명의 군인이 배치된 것과 비교하면 차별이 아닐 수 없다.

군대가 줌머인 여성을 상대로 벌이는 범죄도 심각하다. 아시아선주민조약(Asia Indigenous People Pact)'은 보고서에서 1998년부터 2006년까지 방글라데시 군 당국과 벵골인 정착민이 줌머 여성들을 상대로 벌인 폭력 사건이 강간 36건, 성희롱 13건, 납치 9건, 고문 25건이라고 밝혔다. 줌머인연대는 지난해에만 21명의 줌머인 여성이 성범죄 피해를 당했다고 언급했다.

그다음으로 그가 꼽은 것은 자치권 문제다. 그는 방글라데시 정부가 줌머인의 자치권을 인정해야 한다고 했다. 역사적으로도 줌머족은 오랜 기간 자치를 누렸다. 17세기 무굴제국이 치타공 지역을 지배했을 때도 조공을 바치는 대가로 줌머족은 자치권을 잃지 않았다. 1860년부터 이 지역을 지배한 영국 정부는 1900년에 ‘치타공 산악지대 매뉴얼’과 ‘치타공 산악지대 규율’을 선포하며 영국 정부 차원에서 줌머인의 자치와 안전을 보장했다. 인도 정부도 이를 인정했다. 그러나 파키스탄과 방글라데시가 이 지역을 차례로 지배하면서 줌머인은 자치권을 잃었다.

실상은 이런데도 이를 알리는 국내외 언론은 많지 않다. 로넬씨는 “오늘 기자회견에 기자님들이 많이 오시지 않았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한국의 주요 언론 중 이날 기자회견을 보도한 곳은 없었다. 외신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더 가디언, CNN, BBC에 검색한 결과 줌머인 관련 기사는 손에 꼽을 정도로 많지 않았다. 로넬씨도 이에 동의했다. “때에 따라 다르지만 외신에서 안 다루는 것이 맞아요. 관심이 없는 거죠”고 그가 말했다.

로넬씨는 한국 정부와 한국민이 줌머인에게 관심을 가져달라고 당부했다. 재정적인 지원이 아닌 국가적 차원에서 봐달라는 뜻이다. 그는 호주 정부를 사례로 들었다. 호주는 정부 차원에서 줌머족 사안에 접근하고 있다. 자국에서 공부할 방글라데시 학생들을 선발할 때 방글라데시 정부로 하여금 줌머족 학생도 일정 부분 반드시 선발하게끔 하는 식이다.

“방글라데시에 진출한 한국 기업이 많으니 한국 정부가 방글라데시 정부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다”고 그가 말했다. 2013년 코트라가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방글라데시 현지에 진출한 한국 기업의 수는 150여개다.

2010년 한국에 와 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차크마 슈만갈(29)씨도 인터뷰에서 한국민이 줌머족에게 관심을 가져줄 것을 호소했다. 그는 “줌머인을 지지해주세요. 경제적인 것이 아닌 정신적으로 우리를 지지해주세요”라고 하며 “한국 사람들이 우리를 응원해 주면 더 힘이 날 것 같다”고 말했다.

로넬 자문위원장은 인터뷰 말미에 방글라데시 정부에 요구하는 바를 다시 한번 강조했다. 그는 ▲‘평화협정’ 이행▲치타공 산악지대 자치권 인정▲군대철수▲군대가 저지른 만행에 대한 철저한 조사▲치타공 산악지대 내 벵갈리 정착민 철수▲종교탄압 중단을 말했다.

현재 줌머인 120여명 정도가 한국에 살고 있다. 대부분이 난민지위를 인정받아 합법적인 신분으로 체류 중이다.

인터뷰가 끝난 뒤 사진 한 장을 더 찍어달라는 요청을 기꺼이 받아들인 줌머인연대 회원들.

윤성민 손재호 기자 wood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