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을 바라보는 한국인의 시선에는 이렇게 상반된 두 인식이 공존하고 있었다. 4차 산업혁명이 인류에 혜택을 줄 거라는 기대가 80%를 넘어선 반면, 비슷한 수의 사람들이 '내 일자리가 위태롭다'는 불안과 공포를 느끼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곧 닥쳐올 거대한 변화로 새로운 세상이 열릴 텐데, 나는 과연 그 변화를 맞이할 준비가 돼 있는가. 2017년의 한국인은 이런 생각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연구센터는 지난주 발행한 '미디어 이슈'(3권 4호)에서 '4차 산업혁명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을 다뤘다. 최민재 책임연구위원은 20~50대 성인남녀 1041명을 대상으로 "4차 산업혁명이란 경제적 사회적 담론에 일반 국민이 갖고 있는 관심도와 인식"을 조사했다. 조사는 4월 18~21일에 온라인 설문조사 방식으로 진행됐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경제 및 복지 전망'을 다룬 문항에서 "4차 산업혁명은 인류에게 혜택을 줄 것"이란 항목에 응답자의 82.6%가 동의했다. 연령별 차이는 두드러지지 않았다. 다만 여성(80.1%)보다 남성(85.0%)의 동의율이 조금 높았다.
"4차 산업혁명은 경제의 신성장 동력이 될 것"이란 항목에도 82.4%가 긍정적 입장을 밝혔다. 20대는 동의율이 78.3%로 다른 연령대보다 낮았고, 연령이 높아질수록 동의율도 높아지는 특징을 보였다.
"4차 산업혁명으로 복지제도의 중요성이 커질 것"이란 데에는 응답자의 73.6%가 동의했다. "4차 산업혁명으로 여가시간이 많아 삶의 질이 좋아질 것"이란 항목에선 55.5%가 긍정적 반응, 44.5%는 부정적 견해를 보였다.
인류 전체에 혜택이 돌아가고 신성장 동력이 돼서 경제 전반에 긍정적 영향을 줄 거란 전망에는 압도적 다수가 동의했지만, "내 삶에도 그렇게 긍정적일까"란 물음 앞에선 동의율이 뚝 떨어진 것이다. 학력이 낮을수록, 소득이 낮을수록 삶의 질이 좋아질 거라는 데 동의하는 비율이 낮았다.
이런 인식은 일자리 전망을 묻는 문항에서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4차 산업혁명으로 빈부격차가 심해질 것"이란 항목에 응답자의 85.3%가 "그렇다"고 답했다. 여성의 평가가 더 비관적이었다. "전체적으로 일자리가 감소할 것"이란 데에도 무려 89.9%가 동의했다. 여성은 93.5%, 남성은 86.3%여서 여성이 일자리 위협 공포를 더 크게 느끼고 있었다.
더 구체적으로 "4차 산업혁명은 내 일자리를 위협할 것인가"이란 질문을 던지자 76.5%가 "그렇다"고 했다. 학력별로는 저학력자가, 사회계층 귀속의식 집단별로는 하층에 속한다고 응답한 집단의 동의율이 높았다. 고졸 이하는 81.1%, 대졸은 77.3%, 대학원 재학 이상은 66.7%가 "내 일자리를 위협할 것"이란 전망에 동의했다.
미디어연구센터는 지난해 3월 '미디어 이슈'(2권 2호)에서 '진격하는 로봇 : 인간의 일자리를 얼마나 위협할까'란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당시 설문조사에서 ‘인공지능, 자동화, 로봇이 내가 현재 하고 있는 일·직업을 위협할 것인가'란 문항에 '그렇다'는 52.2%, '아니다'는 47.8%였다. 이와 비교하면 이번 조사에 나타난 '내 일자리 위협' 인식은 크게 높아진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이 미래세대의 일자리를 감소시킬 것인가"라는 질문에도 응답자의 83.4%가 동의했다. 이는 내 자녀의 일자리에도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이 퍼져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4차 산업혁명과 관련해 한국인이 가장 많이 연상하는 단어는 ‘인공지능’이었다. 다음으로 IT기술, 로봇, 자동화 등이 뒤를 이었다. 관심을 갖고 있는 정보 분야는 ‘4차 산업혁명 시대 유망 직종’을 꼽은 응답자가 가장 많았다. 특히 20대는 이 정보에 대한 관심이 월등히 높았다. '4차 산업혁명 관련 교육 정보'는 50대가 21.8%로 매우 높게 나타났다.
태원준 기자 wjt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