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토피피부염과 여드름, 탈모 등 질병 이름과 그에 대한 효과를 표시한 기능성 화장품을 허용하는 화장품법 시행규칙 개정안의 오는 30일 시행을 앞두고 의료계 반발이 커지고 있다. 6개 전문가 단체는 4일 감사원에 공익 감사를 청구했다.
대한피부과학회 최지호 회장과 피부과의사회 김방순 회장 등은 이날 모발학회 아토피피부염학회 여드름학회 화장품의학회 피부과의사회 등 6개 단체 회원 634명이 서명한 공익 감사 신청서를 감사원에 제출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화장품법 시행규칙 개정안을 학술단체와 시민단체 의견을 무시한 채 법규 강행을 시도하고 있다는 게 감사 청구의 취지다.
지난 1월 12일 개정된 화장품법 시행규칙에 따르면 ‘아토피성 피부에 사용이 적합한 화장품, 여드름성 피부에 적합한 화장품, 탈모의 완화에 도움을 주는 화장품’ 등 질병 이름이 들어간 화장품이 가능하도록 허용하고 있다.
대한아토피피부염학회 피부과학회 등은 “아토피피부염은 만성 염증성 피부질환으로 심한 경우 입원치료까지 필요하다”면서 “이번 개정안으로 환자들이 잘못된 홍보와 효과가 입증되지 않은 화장품에만 의존하다가 적당한 치료 시기를 놓쳐 합병증이 생기고 오히려 심각한 국민 불편과 의료비 지출을 가져 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대한여드름학회 등은 “여드름이라는 질환 명을 섣불리 기능성 화장품의 영역으로 포함시켜 소비자 접근성을 용이하게 할 경우, 환자들이 단순하고 획일화된 화장품 문구와 광고에 호도돼 치료 시기를 놓치면 여드름 흉터 발생으로 환자들의 삶의 질이 낮아지는 등 국민 건강에 심대한 위해를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들 단체는 “화장품 시행규칙이 그대로 강행될 경우 국민들은 질병 이름을 표시한 화장품이 해당 질병에 의학적 효과가 있을 것으로 오인, 화장품에 의존함으로써 치료 시기의 장기화 및 치료비 상승 등으로 이어질 것이 자명하다”고 지적했다. 또 “질병 이름과 의학적 효과를 표시한 화장품은 해당 질병에 효능을 가진 기능성 화장품이라는 명목하에 고가로 책정돼 소비자들의 경제적 부담을 더욱 높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식약처는 19대 국회때인 2014년 10월 같은 사안에 대해 화장품법 개정을 추진했지만 여야 모두로부터 화장품 업체를 대변한다는 우려와 질타를 받으며 철회한 바 있다. 또 2012년 9월에 발행한 소비자 교육자료를 통해서는 화장품에는 의학적 효능, 효과 등의 표현을 금지한다고 명시하고 있으며 아토피, 여드름 등 질병이 포함된 표현은 사용할 수 없다고 스스로 확인했다.
이들 단체는 “상위법인 화장품법과 대법원 판례에 의해 화장품에는 의약품으로 잘못 인식할 우려가 있는 표시를 할 수 없고 질병에 관한 표현이 금지돼 있다”면서 “그럼에도 식약처가 아무런 견제장치 없이 개정이 가능한 시행규칙(총리령)을 갖고 산업계만 대변하는 정책을 강행하려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피부과의사회 김방순 회장은 “시행규칙 개정과 관련한 의견 조회 절차에서 이런 문제점을 여러차례 지적했지만 식약처가 이를 반영하지 않고 불통의 자세를 고집하고 있어 공익 감사를 청구하게 됐다”면서 “앞으로 헌법소원과 효력정치 가처분 신청 등 추가 대응에도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식약처는 "시행 규칙 개정안은 탈모와 아토피 화장품 등 관련 시장이 커지면서 오히려 부정확하고 소비자에게 오인을 줄만한 치료 효과를 갖고 일부 화장품업계가 과대 광고하거나 홍보하는 걸 규제하는데 목적이 있다"고 밝혔다.
식약처 관계자는 "이런 편법을 막기 위해 화장품 업체가 이제 아토피 여드름 탈모 등 질환명을 쓰려면 반드시 과학적 근거를 제출하도록 철저히 감시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또 "국민이 오해하지 않도록 기능성 화장품에 의약품이 아니란 사실을 함께 표기하도록 시행규칙 개정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민태원 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