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성격은 타고난 기질과 양육 환경이 결정하게 된다. 이 둘 중 무엇의 비중이 더 큰 지에 대해서는 학자들 간에도 논쟁이 계속되는 주제 중 하나다.
하지만 키우기가 까다롭고 힘든 아이들 중 상당수는 초기 양육에 실패에 기인하는 경우가 많다. 전문가가 아닌 엄마로서는 아이의 상태를 민감하지 받아들이지 못하고 방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친구 관계에 원만하지 않은 아이들 중에는 ‘아스퍼거 장애'의 성향을 본래 갖고 있는 경우도 있지만 생애 초기 애착관계 형성에 실패하면서 남의 감정을 공감하거나 감정을 교류하는데 서툰 아이들이 대다수다.
D는 초등학교 5학년 남자아이다. 학교 가기를 거부해 병원을 찾았다. D는 어릴 때부터 친구들과 어울려 놀 줄 모르고 집에만 있으려 했다. 최근에는 아이들이 무섭다며 학교 자체를 가지 않으려 했다.
D의 얼굴은 표정이 없이 굳어 있었다. 묻는 말에도 거의 ‘잘 모르겠다'거나 ‘생각 해본 적 없다'는 식으로 답했다. 그림을 그릴 때도 전체 화면 중 아래쪽에 붙여서 전반적으로 아주 작게 그렸다. 나무를 그려보라고 하니 ‘상태가 좋지 않아 곧 죽을 것 같은 나무’라고 했고, 무너져 사라져 버릴 것 같은 집을 그렸다. 많이 우울한 아이였다.
D의 엄마는 D가 너무 까다롭고 키우기 힘든 아이였다고 했다. 두 세살 까지도 낮과 밤이 뒤바뀌어서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아이를 돌봐야 했을 정도로 고생이 심했다고 한다. 그런데 동생을 낳고 보니 동생 또한 많이 울고 징징대며 잠을 제대로 자지 않았다. 그런 두 아이를 키우느라 엄마는 지칠대로 지친 상태였다.
D의 형제는 우연히 비슷한 기질을 타고 난 걸까? 아니면 유전적 유사성이 있는 것일까? 유전적으로 비슷한 기질을 타고 나는 경우도 있지만 D 형제의 경우는 같은 양육 환경 속에서 비슷한 성격이 형성되었다고 보는 게 맞다.
D의 엄마는 온순하고 착하다는 소리만 들으며 살아왔다. D의 경우처럼 남한테 감정을 표현할 줄 모르고 불만이 있어도 싫은 소리 제대로 못한 채 스스로의 감정을 누르며 살았다. 그러니 내적으로는 항상 갈등에 휩싸여 있고 적대감이 가득차 있었다. 이웃집 여자와도, 시어머니와도 심지어 남편과도 그랬다.
그러다보니 쌓인 불만이 아이들에게 표출됐다. 엄마는 아이들과 있을 때에도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대한 생각에 사로 잡혀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니 아이가 어떤 상태에 있는지, 어떤 걸 원하는지 제대로 알지 못했다. 이른바 ‘민감성이 부족한 엄마’였다. 아이들은 당연히 많이 보채고 징징대며 엄마가 보기에 이해할 수 없는 까다로운 아이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엄마로부터 이해나 공감을 받지 못한 아이들은 당연히 다른 사람과 공감하지 못한다. 그러니 친구와 공감하거나 교류할 줄 모른다. 친구가 없는 아이들은 학교가 재미없고 외로운 곳이 된다. 또한 자신의 감정을 이해 못하고 무감각한 엄마에게 보내는 불만의 신호가 "학교를 가지 않겠다"는 식의 극단적인 방법으로 나타난 것이다.
치료를 받으면서 엄마의 아이들에 대한 원망은 미안함으로 바뀌었다. 먼저 엄마는 자신의 삶의 방식을 바꿔나가고 자기를 벗어나 아이들 입장에서 느껴 보려고 노력했다. 그러자 차츰 D의 얼굴에 드리워 졌던 그늘이 걷혀져 갔다.
D는 엄마의 이해를 받으면서 친구들을 볼 수 있게 됐고 친구에 대한 관심도 늘어났다.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즐거움을 알게 되었다. 그동안 고립된 생활로 인해 뒤떨어진 사회적인 기술은 사회성 훈련을 받으면서 차츰 향상돼 지금은 친구들 사이에서 리더 역할을 하면서 잘 지내고 있다.
이호분(연세누리 정신과 원장, 소아청소년 정신과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