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전노장’ 주희정(40·서울 삼성)이 스무 번째 시즌을 매듭지었다. 플레이오프 준우승의 아쉬움은 남았다. 하지만 그는 올 시즌도 한참 어린 후배들과 견주어 전혀 손색이 없는 기량을 뽐냈다. 시간은 흘렀어도 베테랑 포인트가드의 진가는 그대로였다.
지난 2일 막을 내린 프로농구(KBL) 챔피언결정전. 농구명가 재건을 외치던 삼성은 안양 KGC인삼공사에 밀려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다. KGC의 창단 첫 통합 우승을 지켜본 삼성 선수들 중에서도 주희정의 아쉬움이 조금 더 컸을 터다.
데뷔 첫 해 신인왕을 차지했던 주희정은 어느덧 선수생활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그래서 요즘 더 간절하다. 유니폼을 벗기 전 우승반지를 하나 더 끼는 게 마지막 목표이기 때문이다.
주희정은 2000-2001시즌 삼성 유니폼을 입고 챔프전 우승을 경험했다. 플레이오프 최우수선수(MVP)도 그의 몫이었다. 그리고 16년 만에 삼성에서 우승의 영광을 재현하리라 다짐했지만 다음 기회로 미루며 아쉬움을 삼켰다.
그래도 주희정의 스무 번째 시즌은 화려했다. 주희정은 올 시즌 불혹의 나이로 정규리그 51경기에 나섰다. 평균 9분 55초를 뛰었고, 1.47점 1.3어시스트를 올렸다. 후배 포인트가드 김태술이 주전으로 나섰다. 그는 출전시간이 줄었고, 개인기록은 자연스레 떨어졌다. 그가 정규리그에서 한 자릿수 출전시간을 기록한 건 올 시즌이 처음이었다.
사실 출전시간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는 늘 그래왔듯 꾸준함을 이어갔다. 철저한 몸 관리를 통해 큰 부상 없이 시즌을 마쳤다. KBL 사상 최초로 1000경기 출전이라는 금자탑을 쌓았다. 개인통산 5300어시스트와 1500스틸을 돌파하며 역대 1호 기록을 새로 썼다.
주희정은 출전시간이 줄어도 이상민 감독이 부르면 언제나 코트를 밟을 준비가 돼 있었다. 이러한 마음가짐은 플레이오프에서 크게 빛을 발했다. 그는 김태술이 무릎부상 여파로 컨디션 난조를 보이며 주춤하자 공백을 메우기 시작했다. 야구로 치면 소방수라 불리는 구원투수였다.
주희정은 6강과 4강 플레이오프에서 평균 22분을 뛰었다. 정규리그 때보다 출전시간이 급격히 늘었지만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적재적소에 패스를 뿌리고 3점포로 외곽공격을 지원했다. 그는 챔피언결정전 6경기에서도 평균 12분가량 소화했다. 후배 가드들이 흔들릴 때면 어김없이 코트를 밟았다. 그리고 금세 팀의 중심을 잡았다.
주희정이 진짜 빛났던 이유는 스텟으로 보이지 않는 안정적인 리딩 때문이었다. 주희정이 투입되면 공이 원활하게 돌았다. 짜여진 패턴에 의한 팀 플레이가 시작됐다. 코트 위 나머지 네 명의 선수들도 주희정의 지휘 아래 안정감을 되찾았다. 20년간의 풍부한 경험에서 우러나온 안정적인 경기운영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덕분에 삼성 선수들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값진 16경기를 치를 수 있었다.
주희정은 또 한 번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었다. 선수생활을 이어가면 21번째 시즌을 맞이한다. 은퇴 전 우승반지를 추가하겠다는 그의 꿈은 이뤄질 수 있을까.
박구인 기자 captain@kmib.co.kr